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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이야기

이주민이야기 : 소소한 제주 이야기

“제주에서 필요한 건 ”

“제주에서 필요한 건 ”

by 라라 여행작가 2016.11.16

제주에 살다 보니 점점 많은 것이 필요 없게 된다. 오늘, 친구와 밥을 먹으며 이런 이야길 나누었다. <어? 너 신발 못 보던 거네?> 응, 이거 오래된 거야. 한 4년 된 거 같은데. <그때 별 그려져 있던 운동화는 버렸어?> 응, 그건 밑창이 입을 다 벌려서 그냥 버렸어. 그건 9년이나 된 거였어. <아, 그래? 왜 접착제 붙여서 더 신지?> 그럴까 하다 그냥 버렸어. 운동화가 두 개나 있잖아. 너무 낡기도 했고 너무 많은 것 같아서 버렸지.

어느 순간 굽이 높은 구두는 신발장에서 곰팡이와 먼지에 뒤덮여 자리 잡은지 오래. 또는 정말 부득이하게 신어야 할 경우만 닦아서 신게 된다. 제주에 살게 되면서 얼굴은 간단하게 로션과 선크림만. 화장은 굿바이. 신발은 편안한 슬리퍼나 맘 편하게 푹. 꺾어 신고 나가는 가벼운 운동화가 전부. 고무줄로 된 몸뻬 바지나 트레이닝복, 티셔츠가 다다. 때로 잘 차려입은 사람을 볼 때면 <응? 관광객이군.> 정도가 되었다.

우리는 어느새 '육지 것'에서 벗어나 현지인, 즉 섬 것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필요 없는 고가의 화장품과 가방과 옷과 신발. 느슨하게 만나 그냥 그렇고 그런 밥집에서 막걸리를 앞에 두고 느슨하게 어제오늘 있었던 일상을 이야기하며 편안하게 만나는 시간은 부담 없어 편안하다. 삐딱하게 앉아 마시는 술상 밑으로 우리의 배가 출렁여도 뭐 어때. 여긴 서울이 아니잖아.

여긴 사람이 많지 않아 좋고 누굴 신경 쓰지 않아 좋아. 이제는 점점 우리는 관광객들 따위 북적이는 맛 집과 근사한 카페에서 벗어나 사람이 많지 않은 우리들만이 아는 장소에 모여 소소한 하루의 한 조각을 보낸다.
예전에 오랜 시간 여행을 다니며 내가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한 것이 아닌가 깊은 생각에 빠지곤 했다. 스톱오버를 걸고 한국에 돌아올 때면 내 작은 방, 가지고 있던 가방과 구두, 옷과 화장품을 지인들에게 나눠주거나 또는 버렸다. 그때 친한 선배가 "너 혹시 이제 돌아오지 않으려고 그러는 거야? 뭐 어디 죽으러 가는 사람 같아!" 그렇게 말하기도 했는데 여행을 다니던 방랑자는 돌아와서 공간을 볼 때면 부끄러웠다. 내가 넘치도록 많이 가졌다는 사실이.

이후로 나는, 필요하지 않으면 소비하지 않았다. 내가 너무 많이 가졌다는 사실을 인지했을 때 어쩌면 내 영혼은 이미 언제든 떠날 채비를 하는 방랑자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단 하나의 가방 속에 필요한 것을 메고 길을 걷던 시간을 자주 떠올린다. 짐 보따리 하나면 충분한 인생. 우리는 밥 수저 하나도 참 여러 개 가지고 사는 풍요 속에 살면서 때로는 빈곤한 영혼이다. 친구가 이야기한다.

<제주에선 정말 편안하게 사는 게 제일 좋은 것 같아. 도시처럼 필요로 하는 것들은 더 이상 여기선 필요치 않아.>

나는 웃으며 말한다.

그럼! 그런 것들은 이제 무의미해. 여긴 제주니까.
제주라서 다행이야. 제주라서 우리는, 부자처럼 살고 있어.
가진 게 없어 행복한 오! 우리의 부자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