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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이야기

이주민이야기

“노지껄로 줍서!”

“노지껄로 줍서!”

by 라라 여행작가 2016.12.07

술을 자주, 즐겁게 마시는 편이다. 좋아하는 사람들 빙 둘러앉아 맛있는 요리와 마시는 술 한잔은 누구든 좋아하는 자리겠지. 제주에 내려온지 얼마 안 되었을때 술집에 가서 술을 주문하면 꼭 다시 묻는 말이 있었다.

“차가운 거 드릴까요? 밖에거 드릴까요?”

아니, 뜨끈하게 데워 마시는 정종도 아니고 무슨 술을 밖에거를 주냐고 묻는단 말인가? 도시에선 봄여름가을겨울 할것 없이 늘 마시는 소주는 냉장고안의 히야시(차게 함; 차게 한 것이라는 뜻의 일본어) 잘 된 소주를 차르르르 소주잔에 부어 마시지 않았던가? 제주에 온지 수개월이 지나도록 그 의문은 풀리지 않아 간혹 식당에서 삼춘들이 마시는 모양을 탐구해 보기도 했었다. 삼춘들은 하나같이 “한라산 하얀거 노지껄로 줍서예!” 를 시원하게 외치는 것이다. 이따금 삼촌들은 “멘도롱한거로 줍써!” 를 외치기도 했는데 마치 그 모습은 육지것 따위는 감히 들이댈 수 없는 내공과 아우라가 온 몸에서 발산되는 듯 위풍당당해 보였다. 그렇다. 나는 그동안 <육지것>답게 소주는 차게 냉장고 안에 있는 걸 마시며 그 맛있는 노지의 황홀함을 알지도 못한 채 제주의 대표적인 소주, 한라산을 마시고 있던 것이다!

그러다 알게 된 노지 한라산 소주의 맛은 가히 기가 막혔다. 미세한 온도 차이로 혀끝에서 감도는 러시안 보드카를 뺨치는 이 청량감, 묵직한 바디감은 냉장고에서 막 꺼내 마시던 그 한라산 소주맛이 아니었다.

아니 왜! 이렇게 맛있는 한라산 소주맛을 제주 사람들은 자기네만 알고 마시고 있던 것인가. 게다가 한라산 흰색 병의 디자인은 무언가 촌스러운 듯 하면서도 매력이 넘친다.

병 입구에 있는 태극기 문양은 어찌보면 민족의 계몽과 자주독립을 표현하는 듯 민족주의적이다. 파란색 바탕에 쓰여 있는 한라산이라는 글자와 눈이 쌓인 듯한 한라산의 그림도 맘에 든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이후로 한라산 소주의 맛에 흠뻑 빠져 지금은 육지에 올라가도 한라산 소주가 있는 술집을 찾을 정도의 매니아가 되었다.

제주에 관광 온 사람들에게도 괜찮다면 한 번쯤 꼭 제주 사람들이 마시는 것처럼 노지 소주를 마셔보라는 조언도 잊지 않는다.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서 만든 청정 제주의 술은 가히 육지의 술맛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참 맛있다.

제주살이가 해를 거듭할수록 나는 이제 그 위풍당당한 제주 삼춘들처럼 술집에 들어가면 먼저 말한다.

“여기요! 한라산 하얀거, 노지껄로 줍서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