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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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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선택한 제주의 삶

우리가 선택한 제주의 삶

by 라라 작가 2017.05.17

제주에 내려온 지도 올해로 5년이 되었다. 외국에서 꽤 지내다 서울로 돌아오니 바쁘고 시끄럽게만 느껴지던 도시는 어느새 나의 발걸음을 돌리게 하더니 먼 남쪽 제주란 섬으로 내려오게 만들었다.

작은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도착할 수 있는 섬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내게 제주는 또 다른 외국의 섬 같은 곳이다. 도시를 떠나 제주를 선택한 이유는 어쩌면 잘 몰라서일지도 모른다.

잘 모르니까 낯선 타국의 도시 같은 기분으로 여행하듯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5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다. 낯선 길과, 낯선 문화와, 낯선 사투리는 여행자 감성을 안고 살아가는 나에게는 더없이 좋은 매직 아일랜드다.

흔하디흔한 마트와 편의점이 가깝지 않아 장바구니를 들고 오래오래 걸어 장을 보러 가면서 길 옆 밭의 작물을 보는 일, 새로 생긴 동네 빵집의 오픈 날짜를 기다리는 일 등은 도시에서 살 때와 다르게 신선하고 풍성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버스 배차시간이 많지 않아 버스 정류장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고, 그 버스를 타고 시골구석구석을 누비며 꼬불꼬불한 길을 다니는 버스를 타고 친구가 사는 동네로 놀러 가는 일도 나쁘지 않다.

나는 단지 조금 느려졌을 뿐, 이 삶에 속도에 맞혀 느린 걸음을 걸으며 주변을 보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사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이웃으로 지내는 친구가 있다. 우리는 수년전 인도 자이살메르란 곳의 작은 사막 마을에서 만났는데 수년이 흐른 후, 이웃으로 살고 있는 걸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 친구 역시 도시를 떠나 제주에 내려와 작은 농가주택에 살며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농사를 짓고 있다.
오래된 집이라 난방이 되지 않아 땔감을 구해 난로를 때우며 살면서 농부가 꿈인 그는, 오늘도 수확한 브로콜리를 한 움큼 들고 나타났다.
해가 거듭할수록 일본 카레처럼 까매지고 있는 그의 건강한 얼굴을 보면 참으로 아름답다. 물질적인 소비와 허울 가득한 삶이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해 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의 제주는 스스로 선택해 밟고 있는 건강한 흙이 있는 제주다. 아직 초보 농부이자 실험정신 가득한 그의 밭에는 약을 치지 않아 알이 작은 감자와 작은 브로콜리뿐이지만 그에게는 그만의 철학이 있다.
약을 한가득 뿌려 더 잘생기고 더 빠르게 얻어낸 작물이 아닌 인간 본연의 몸에 어울리는 건강한 작물을 얻어내는 그런 젊은 농부의 꿈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는다.

도시에서 살 때처럼 백화점도 없고, 마트도, 극장도 멀리 있지만 소풍하듯 살아가는 생활은 나쁜 것만은 아니다. 빨리빨리가 아니라 천천히 느리게, 더 느리게. 제주의 바람은 등 뒤에서 빨리빨리가 익숙한 우리에게 서두르지 말라고 말한다.

도시에서는 바빠서 신경 쓰지도 못한 나무와 꽃이 보이고, 하늘이 보이고, 멀리 한라산과 바다를 보며, 바람의 강도를 느낀다. 다양한 감성을 지니고 살아가는 제주란 땅이 그저 평화롭게 이어나가기를 늘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