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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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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때문에 제주어가 사라질까봐

나 때문에 제주어가 사라질까봐

by 이현진 객원기자 2017.03.16

제주 4.3을 다룬 영화 <지슬>을 본 적이 있다. 한국영화인데 자막에 의존해야했던 건 처음이다. 배우들이 제주 사투리로 연기했기 때문이다. 육지 사람들은 제주어라고도 부르는 아주 생소한 방언이니 웬만해선 알아듣기 어렵다.

제주도민이 된 지 1년 하고도 4개월째. 아는 제주 사투리라고는 '혼저옵서예'가 전부이고(이마저도 '혼자 오라'는 말인 줄 알았다), 가수 혜은이의 노래 '감수광'이 어디 강 이름인가 싶었던 나는 이제 듣기 영역에서 70%는 이해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버스 옆자리에 앉은 할머니가 살갑게 말을 걸어줘도 무슨 말씀인지 알아들을 길이 없어 "아, 예..예.."하고 웃을 수밖에 없었던 것에 비하면 일취월장이다.

심지어 제주 사투리 몇 개는 입에 배어 자연스럽게 나오기도 한다. 대부분이 초급(?)인 내가 따라 하기 어렵지 않은 줄임말 정도다. 이를테면 완(왔다), 간(갔다) 등등. 마트에서 다섯 살이나 됐을 어린 꼬마가 “엄마, 어디 간?” 하는 걸 보고 귀여워 웃음이 나고, 버스정류장에서 중학생들이 “너 그거 들언? 가이랑 가이랑 싸원~” 하는 얘기들을 엿들으면서 ‘아, 나도 저 정도는 할 수 있겠다’는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겼고, 사투리를 좀 더 공부해 실생활에서도 써보고 싶어졌다.

줄임말을 알기 전까지 내 사투리는 애늙은이 같았다. 제주에 와서 사귄 친구가 귤 농사를 짓고 밭에서 일하며 나이든 삼춘들에게 배운 말을 그대로 내게 가르쳐줬기 때문이다. 이주 후 새 일자리를 얻고 제주 토박이인 20, 30대 직장 동료들과 지내면서 세대별로 사용하는 말투가 꽤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그동안 연습한 사투리 실력을 뽐내보고자 “기꽈?”, “그랬수다게~”, “뭐랜 햄시냐” 등의 고급 표현을 구사했으나, 동료들은 “우리 할머니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과’나 ‘꽈’, 심지어 ‘꽝’은 안 쓴단다. 조금 더 지켜본 결과, 40대 이상 중장년층은 존대를 할 때 끝에 ‘~예’를 붙이지만 젊은 세대는 거의 쓰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나이든 분들은 젊은이들처럼 거의 모든 말을 줄여서 사용하지 않는다. 알수록 흥미롭다.

사실 제주로 이사 오기 전, ‘육짓것들’이란 표현이 있다는 것에 눌려 있었다. 여기서도 돈 벌고 밥 해먹으려면 잘 섞여 살아야 하는데 이방인으로 다시 돌아가게 될까봐 걱정이 됐다. 그 높은 벽 중 하나가 너무 다른 언어였다. 그런데 생활할수록 그 말의 맛이 매력적이다. 세대가 바뀌면서 혹여 줄임말만 남게 될까 노파심까지 든다. 아닌 게 아니라, 제주 방언은 유네스코에 소멸 위기 언어 4단계인 ‘아주 심각하게 절멸 위기에 처한 언어’로 등록돼 있다고 한다.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는 것은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인한 ‘육지화’다. 육짓것인 나는 여기에 일말의 책임을 느끼며 오늘도 사투리를 써보려고 노력한다. 물론 그 어설픔이 좀 우습겠지만(실제로 동료들은 내 억양이 어색하다며 여전히 실소를 금치 못하고 있다), 경해도 잘도 재미진게!

* 제주에세이 코너에서는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제주 이야기를 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