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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이야기

이주민이야기

사람도 안 살던 곳에 살아요

사람도 안 살던 곳에 살아요

by 이현진 객원기자 2017.03.30

2015년 11월 제주도로 이사 오던 날, 공항에서 택시를 탔을 때 기사분의 반응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집 주소를 말하자, 아저씨는 두 번이나 “네?” 하고 되물었다. 제주 산 지 수십 년 동안 그런 동네 이름은 처음 들어본다는 표정에, 내가 잘못 적은 건가 싶어 적잖이 당황했다. 다행히 내비게이션이라는 문명의 이기 덕분에 우리는 일단 미지의 그곳으로 향할 수 있었다. 불안해하고 있는 내게 아저씨는 다음과 같은 말로 화룡점정을 찍어주셨다.

“아유, 거기 옛날에는 사람도 안 살던 곳이에요~”

육지에서 평생을 살다가 직장을 그만두고, 지인들을 뒤로 하고 온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차창밖에는 사람과 건물들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주소가 이거 맞아요? 이런 곳에 집이 있기는 해요?” 아저씨의 걱정이 극에 달했을 무렵, 거짓말처럼 집이 나타났다. 깊은 산속의 베이스캠프 같은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였다. 깜깜한 밤이라 그런가, 주변엔 집 외에 아무 것도 없어 보였다.

날이 밝자마자 집 근처를 둘러봤다. 초록색은 풀이고, 누런색은 흙이요, 푸른색은 하늘이다. 이웃에 서너 채의 집이 더 있다는 것에 그나마 위안했다. 육지에서는 대형마트, 심지어 여러 개가 줄지어 있어 골라갈 수 있는 아파트촌에 살았다. 제주 중산간으로 이사 오며 걱정됐던 것은, 다른 것보다도 ‘마트가 없는 삶’이었다. 마트는커녕 슈퍼도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있을 때 2.6km 떨어진 곳에서 무려 편의점을 발견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저녁 6시면 문을 닫는다니 반쪽짜리 오아시스였다. 인적 없는 황량한 농로를 걸어 귀가하면서, 영화 <살인의 추억> 2편을 여기서 찍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 이후로 해가 지면 거의 집밖을 나가지 않았다.

그렇게 사람보다 꿩과 노루를 더 자주 보는 이곳에 산 지도 1년 반째를 지나고 있다. 그런 우리 동네가 몇 달 사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집이 하나둘 들어서더니 타운하우스를 이루었고, 얼마 전에는 시내에서 흑돼지구이로 꽤 유명하다는 가게가 문을 열었다. 또 동네 식당에서 치킨을 팔기 시작해, 집에서 ‘치맥’을 즐기고 싶다는 주민들의 염원이 이루어졌다. 이러다가 *마트까지 생기는 거 아니냐고 가족들과 농담을 했는데, 실은 설렘 반 걱정 반이다. 황무지에 건물들이 들어서려다 보니, 뻔질나게 드나드는 공사차량 때문에 이 작은 마을의 좁은 길이 점점 넓어질 지경이다. 소음과 먼지도 적지 않다. 제주 땅값이 올라 건축 붐이 인다더니 ‘사람도 안 살았다’던 이곳까지 들썩일 줄은 몰랐다. 우리집을 둘러싸던 대나무숲의 1/3이 사라진 게 가장 아쉽다.

따지고 보면, 나 역시 대나무숲을 밀고 들어온 사람. 또 건물이 들어설까 겁이 나기 시작했다면 이기적인 걸까.

이현진 객원 기자
- 중산간에 살며 빵을 굽고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