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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이야기

이주민이야기 : 제주에세이

'지옥철'이 그리워질 줄이야

'지옥철'이 그리워질 줄이야

by 이현진 객원기자 2017.04.13

우리 가족이 제주에 내려와 산 지도1년7개월째를 지나고 있다.이 섬에서 쭉 살아온 도민들의 표현에 의하면‘예전엔 사람도 안 살았던’어느 중산간 마을에 정착한 이후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다.

아무리 한라산과 가까워 기온이 낮다지만 집안에서도 입김이 훅훅 나오는 혹독한 추위와 싸우며,무릎까지 쌓인 눈을 지겹도록 치우며 겨울을 견뎠다.(사진을 본 지인들은 제주도가 아니라 강원도 철원으로 간 거냐고 물었다)게다가 곤충도감에서나 볼법한 크기의 거미와 지네,나방과 함께 살고 있다.

지금껏 살아온 도시의 아파트라면 겪지 않아도 될 불편을 감수하면서 이곳으로 온 건 순전히 전원생활에 대한 로망 때문이다.

꽉 막힌 도로,지옥철에 탑승하기 위해 서로의 어깨를 부딪치며 뛰는 사람들,저녁이면 훌륭하지도 않은 드럼 연주를 시작하던 윗집 남자 등 각종 머리 아픈 것들이 없는 곳으로 오고 싶었다.다행히(?)사람도 없고,차도 없다.하지만 버스도 없다.이건 장롱면허10년인 나에게만큼은 크나큰 불행이었다.마을버스는 하루에 단 세 번만 집 앞을 지나간다.

이 사실을 모른 채,폭풍우가 몰아치던 날 마트에 우유를 사러 갔다가 봉두난발이 되어5시간 만에 귀가한 나는 며칠 동안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악몽을 꿨다.차로 불과15분 거리였다.전원생활의 로망은 개뿔,불편은 현실이었다.

30분에 한 대씩 오는 시외버스라도 타려면 집에서2km떨어진 정류장까지 걸어가야 한다.인도가 없어서 차도나 농로로 다녀야 하며,가로등도 몇 개 없어 밤에는 엄두도 낼 수 없다.가까스로 정류장까지 가서도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시외버스가 다니는 고속도로의 인적 드문 정류장이다 보니(여름에는 기다리는 승객보다 거미가 더 많다),탑승하겠다는 의사를 굉장히 분명하게 밝히지 않으면 정차하지 않고 달리는 경우가 왕왕 있다.

한 번은 버스가 언제 도착하는지 알려주는 어플리케이션을 약2초 정도 확인하는 동안 지나가버리는 바람에 다시30분을 기다린 적도 있다.이제는 멀리서 버스가 보이면 놓칠세라 거의 차도의 반 이상을 걸어 나가 손을 흔드는 등 현란한 몸동작을 취하고 있다.오죽하면2분에 한 대씩 도착해 저절로 문이 열리던 지하철2호선,그 지옥철이 그리워진다.

어쩌면 차가 없는 곳을 찾아 제 발로 왔으면서 차가 더 생기길 바라는 게 어불성설일지도 모른다.자연을 만끽하면서 편의도 챙기려는 게 이기적인 걸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이 마을에도 집이 늘어나고,사람이 모여들고 있다.바람이 있다면,두 시간에 한 대씩이라도 마을버스가 있으면 좋겠다.그게 어렵다면 좁은 인도라도 깔리길,아니 그것도 힘들다면 가로등이라도 몇 개 더 생기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