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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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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아직 경 늙지 않았져!

양~ 아직 경 늙지 않았져!

by 라라 여행작가 2017.07.05

내려온 지 5년째이지만 아직도 제주어는 어렵고 신기하기만 합니다. 단어 하나하나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해야 할까요? 제주에 내려와 산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알게 된 이곳 제주 언니들은 나를 앉혀 두고 놀려 먹기 일쑤였어요.
내가 알고 있는 말과는 다른 전혀 다른 단어들의 조합이니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어서 늘 메모장에 적어 두며 기억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제는 육지에서 여행 온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 나도 모르게 제주어가 조금씩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 이렇게 제주라는 바람이 나에게 스며들고 있구나 느끼곤 합니다.

간혹 제주에서 만난 언니들은 나를 앉혀두고 이런저런 말들을 알려 주었는데 그 사이에 내가 껴있으면 못 알아듣는 게 우스꽝스러웠던지 더 신나게 제주어 사투리를 섞어가며 하하 호호 웃기도 하네요. 아니나 다를까 나는 엉뚱한 말을 해서 망신을 당한 적이 있었어요. 또는 혼자 오해한 적도 있었고요.
특히 ‘조근게 요망지다‘ (작은 애가 똑똑하다, 야무지다. 란 뜻의 제주어)는 말은 정말 너무 상처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그 말을 듣고 며칠 말을 안 했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웃음이 나지만 그때 이 육지 것은 제주어로 욕하는 줄 알고 소심해졌답니다.

얼마 전에는 제가 사는 마을의 마늘밭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더운데 음료수나 드시면서 하시라고 음료를 드린 적이 있었어요. 뭘 이런 걸 다 주냐고 하시며 할아버지 내외는 음료수를 드셨죠. 그런데 하루 정도 지나 그 집 할머니가 찾아오셨어요. 할머니는 제게 <얘야, 할아버지한테 할아버지라고 하지 마라> 응?? 이게 무슨 뜻이죠?

저는 갸우뚱했습니다. 할머니 말씀은 <제주에서는 나이 든 사람한테 할아버지라고 하면 안 좋다. 그냥 삼촌 해라 삼촌! 할아버지가 아주 기분 나쁘다고 한다. 정말 꼬부랑 할아버지 같다고!> 저는 그제야 아! 그 삼촌! 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80대인 그 할아버지는 육지 것이 부르는 할아버지가 얼마나 싫으셨을까요?

제주에서는 남녀 성별, 나이에 관계없이 식당이나 이웃에게 삼촌이라고 부른다고들 하죠. 아직도 식당 같은 곳에서 이모 같은 언니들에게 삼촌이라고 부르는 건 영 어색하지만, 저는 마늘밭 할아버지, 아니 삼촌에게 정말 미안했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알게 되었죠. 아무리 나이가 많아 보여도 다 삼촌이다!라는 것.

저는 그날부터 여든이 넘으신 우리 마을 마늘밭 할아버지께 삼촌을 외치는 사람이 되었답니다. 왠지 더 젊어 보이고 건강미 넘치는 느낌의 삼촌이라는 말에 드디어 할아버지는 환하게 웃어주셨고요. 이젠 실수하지 말아야지요.

육지것들아! 양~ 아직 경 늙지 않았져! (야 아직 그렇게 늙지 않았어) 알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