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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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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리네 민박이 아니니까

효리네 민박이 아니니까

by 이현진 객원기자 2017.07.27

오랜만에 연락 온 친구가 말한다. “제주에 사니 좋겠다.” 그냥 인사말이 아닌 게, 몇 번이고 “나도 제주에 살고 싶다”고 한다. “회사 다니기 힘들다”는 밥벌이의 힘겨움이 전제되어 있다.

제주에 이사 온 지 1년 반이 지났지만, 지인들은 여전히 이곳에 살고 있는 나를 부러워한다. ‘떠나요 둘이서 모든 것 훌훌 버리고’ 놀러 오는 곳이라 그런가. 나도 놀러올 때는 그런 마음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섬이라면 여행 온 기분으로 365일을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최근 방송중인 JTBC 예능 <효리네 민박>에서도 영화 같은 장면이 펼쳐지지 않나. 반려동물들이 목줄 없이 전력질주를 할 정도로 광활한 정원에서 노을을 보며 차를 마시고 요가를 하고, 밤이 되면 불을 피워놓고 쏟아지는 별 아래서 잠이 드는 삶.

하지만 나는 벌 만큼 벌어서 제주로 내려와 인생을 즐겨도 되는 이효리씨가 아니었다. 노래가사처럼 ‘신문에 TV에 월급봉투에 이제는 더 이상 얽매이긴 싫어’ 큰 결심을 했지만,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걸 깊이 체감 중이다. 어디에 살든 일을 해야 밥을 먹을 수 있다.

바다를 건너오며 실직자가 된 나는 육지에 살 때보다 더 월급봉투에 얽매였다. 모든 것 훌훌 버리고 온 대가로 내 삶은 최대의 격동기를 맞았다. 영영 못할 것 같았던 세 가지를 실천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사무직 일자리 구하기 힘든 이곳에서 경력을 이어갈 수 없겠다는 판단 하에, 취미로 만지작거리던 제빵을 업으로 삼은 것이 그 첫 번째 도전이다. 책상에 앉아서만 일하다가 내내 서서 육체노동을 하려니 엄지발가락이 다 마비됐다. 대중교통 이용이 너무나 힘든 중산간 마을에서 새벽에 빵집으로 출근하느라 10년 장롱면허의 먼지를 털어낸 것이 두 번째 도전. 상악과 하악이 맞부딪힐 정도로 덜덜 떨면서 차를 몰았던 첫날이 벌써 5개월 전이다. 아직 주차가 서툴러 마트가기에 도전하지는 못했지만, 아버지 약주 드셨을 때 대리운전 정도는 해드릴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이제 가장 큰 과제만을 남겨놓고 있다. 내 인생에 절대 할 일이 없을 것 같았던 결혼이다. 이렇듯 혼자 살다가 우담바라처럼 아무도 모르게 피고 사라져도 괜찮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지만, 이 낯선 섬에 오니 갑자기 자신이 없어졌다.

사실 ‘도전’이라는 단어를 쓰기 무색할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평범한 일들이다. 그 정도로 내가 지나치게 정적이고 의존적이며 안주하는 삶을 살아온 것이 아닌지 반추해본다.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들이 나를 움직이게 만든 건 좋은 점이다. 분명한 건 제주에서의 삶이 육지에서 바라보는 것처럼 낭만적이지만은 않다는 것.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 제주살이를 계획하고 있다면, 단꿈보다는 더 고단하게 열심히 살아낼 준비를 하는 편이 낫다. 나는 관광객이 아니고, 내가 사는 곳은 효리네 민박이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