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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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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한바퀴 1200원, 실화냐

제주도 한바퀴 1200원, 실화냐

by 이현진 객원기자 2017.09.14

처음 제주도로 이사 왔을 때 이웃집에서 도움이 될 거라며 버스시간표를 건넸다. '설마 이게 전부인가?' 당황할 수밖에 없었던 게, 집 앞을 지나가는 버스가 하루에 딱 3번 있었다. 오전 7시, 오후 1시 반, 오후 5시 반. 굳이 시간표를 갖고 있지 않아도 외우면 될 정도로 너무 간결했다.

물론 그 버스는 더 여러 번 운행했지만, 우리 동네 정류장를 지나서 가는 건 정말로 그게 다였다. 집에 가는 버스와 같은 번호인데 집에 가지 않는 버스, 5시 반에 나갈 수는 있지만 돌아오는 버스는 없는 상황. 처음에는 이해되지 않는 체계 때문에 헤매기도 많이 했다. 그 다음에는 이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1시 버스를 타고 나가, 장을 보고도 시간이 남아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졸다가 꾸역꾸역 허송세월을 보내고 5시 차를 타고 들어오곤 했다. 결국 나는 그 불편을 참지 못하고 운전을 배워 조금은 자유로워졌지만, 10분에 1대씩 마을버스가 있던 육지 생활이 자주 그리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난 8월 26일부터 시행된 제주도 버스개편이 일단 반가운 입장이다. 무엇보다 집 앞을 지나가는 버스가 무려 10대로 늘어난 것에서 삶의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시외버스를 탈 수 있는 정류장까지 더 수월하게 갈 수 있게 됐다. 2km의 비포장도로 혹은 인도 없는 차도를 땡볕에 30분 동안 걸어가 시외버스를 타야했던 지난날이 눈물겨울 정도다.
급행버스와 관광지순환버스가 생긴 것도 관광객들에게 반가운 일이다.
동쪽은 거문오름-다희연-비자림-아부오름 등을 돌고, 서쪽은 신화역사공원-오설록티뮤지엄-저지문화예술인마을 등을 거친다. 자가용으로 가면 10km밖에 안 되는 거리인데, 변변한 버스노선이 없어 지척에 관광지를 두고도 가보지 못했던 뚜벅이 시절의 나를 떠올려보면 의미 있는 변화다.

더 좋은 소식은 버스요금이 내렸다는 것. 제주도 내 전 지역이 시내버스 구간으로 요금은 1200원이다.
전에는 요금이 구간별로 책정되어 제주시 끄트머리에 있는 우리 동네에서 서귀포로 넘어가려면 짧은 거리라도 추가요금을 내야 했다.

일례로 제주버스터미널에서 서귀포버스터미널까지 3300원이었는데, 이제는 2000원이나 덜 든다. 구간이 없으니 행선지를 말하지 않아도 된다. 종종 운행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운전기사들은 몇 구간인지 몰라 내게 요금을 되물어보기도 했는데, 서로 편해진 셈이다.

물론 모두가 개편된 버스를 잘 이용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든다. 스마트폰과 어플리케이션에 익숙한 나는 카카오맵을 통해 어렵지 않게 노선을 찾았지만, 60대인 우리 부모님만 해도 완전히 바뀐 버스 번호에 당황했다. 실제로 정류장에서 노인 승객들이 버스마다 행선지를 묻고 어려워하는 모습이 보였다. 관광지로서 관광객을 위한 편의도 필요하지만, 도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대중교통 체계로 자리 잡는 것이 우선과제일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