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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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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싫어 온 제주에서 또 아파트

아파트 싫어 온 제주에서 또 아파트

by 이현진 객원기자 2017.10.26

“제주에 집 빌려주는 거, 얼마나 해? 아들이랑 잠깐 내려가 살아보게.”
서울에 사는 친구에게 문자가 왔다. 나도 몇 개월 전에 신혼집을 구했기에 나름 최신 부동산 시세를 알고 있었다. 어린 아이와 둘이 살기엔 원룸이나 작은 투룸이 임대료나 관리면에서나 적당하다. 하지만 밤새 우는 아이 때문에 이웃주민들과 갈등을 겪고 있는 친구는 독채로 된 집에서 잠깐이라도 편하게 쉴 수 있기를 원했다.

나도 2년 전 제주도로 내려오며 그런 집을 원했었다. 그러니까 바다가 보이거나, 아니면 걸어서 바다로 산책을 갈 수 있어도 좋은 아담한 농가주택. 마당에는 야쟈수와 잔디를 심고 조그만 텃밭도 꾸미고 옹골지게 쌓은 돌담 옆에는 정낭도 둬야지, 했었다. 큰맘 먹고 서울살이를 등지고 오기 위해 필요한 소박한 낭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다시 서울에서처럼 아래층과 위층에 끼인 빌라에 산다. 제주도에 와서까지 이런 주거형태를 선택하게 될 줄은 몰랐다. 우리가 원하는 작은 농가주택은 ‘소박한’이라는 형용사가 어울리지 않는 비싼 몸이 됐다. 제주 촌집 특유의 멋을 살려 리모델링을 하려는 수요가 늘어나면서 임대료도 천정부지로 올랐다.

아쉬운대로 생활이 편리한 지역에서 가격대가 맞는 투룸을 구했다. 잔디마당과 정낭은 없지만, 근사하게도 무려 오션뷰를 건졌다. 날씨가 아주 좋을 때 약 0.5cm 두께의 실오라기 같은 바다가 건물이 없는 틈사이를 메우고 있는 정도지만. 그 인색한 바다라도 보고 있으면 그래도 내가 제주도에 사는구나, 위안을 한다.

5살 때, 아파트로 이사가는 꿈을 이룬 부모님과 함께 평생을 ‘몇동 몇호’에서 살았다. 그렇게 30년이 넘다보니 아파트를 떠나고 싶은 꿈이 생겨 제주로 내려왔다. 아마 나에게 제주살이를 물어봤던 친구도 한달이나마 벌집 같은 곳을 벗어난 시골살이를 원했을 것이다. 그래서 ‘제주 한달살이’ 열풍도 불었을 테고.

그런데 조금 살아보니 내게 제주도는 여유로운 시골이 아니라, 그저 관광지일 뿐이다. 물가와 집값은 비싼데 임금은 낮고 일자리도 제한적이라 살기는 더욱 퍽퍽한 곳. 남편은 예전의 나처럼 막연하게 제주살이를 꿈꾸는 이들을 보면 늘 “1년 동안의 집세와 생활비를 들고 내려와서 그저 소비만 하면서 살 능력이 있을 때 아름다운 섬”이라고 냉소했었다.

우리 부부는 다시 아파트를 꿈꾸고 있다. 임대주택 청약신청을 기다리는 중이다. 아파트에서 생활하기를 정말 원하는 게 아니라, 이 살기 힘든 곳에서 조금이나마 집값의 부담을 덜고자 아파트 입주를 염원하고 있다. 물론 언젠가는 마당 있는 집에 살고 싶다. 내 아이에게는 뛰어놀 수 있는 집을 선물해주고 싶은 게 가장 큰 이유다. 욕심일 수도 있겠지만, 쉽지는 않겠지만, 너무 오래 걸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