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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이야기

이주민이야기

육지에 계신 친정엄마

육지에 계신 친정엄마

by 라라 여행작가 2017.12.04

작년 이맘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가시고 홀로 남으신 엄마는 그런저런 세월의 흐름을 이겨내고 계시다.
우리집은 도시의 평범한 주택인데 내가 어렸을 때 지었던 이 집은 사람이 늙어가듯 노후되어 지금은 이곳저곳 손볼 곳이 많다.

아버지 살아생전, 망치나 기타 장비 등으로 뚝딱뚝딱 고치며 지냈지만 이제 홀로 남은 엄마는 집 전기선이라도 고장이 나면 난감해 어쩔 줄 모르신다. 아버지 첫 기일을 기리기 위해 나는 육지의 엄마 집으로 올라갔다. 겨울이 성큼 다가온 초겨울의 문턱에서 또다시 수도 배관이 터져 전부 교체하는 일이 생겼다.

매번, 크고 작은 공사를 하며 집 관리를 해야 하는데 가까운 서울도 아니고 섬에 앉아 제주에서 늘 엄마를 걱정한다.
홀로 남아 지내는 친정엄마가 늘 안쓰럽고 마음에 걸려 공기 좋고 자연 풍광 좋은 제주에 내려가 살자고 했지만 엄마는 거절하셨다.

평생을 도시에서 살아온 엄마는 병원이나 시장 등의 모든 편의시설이 가깝고 지하철로 편히 다니는 도시가 좋다고 하셨다.
행여 딸에게 누가 될까 할 수 있는 한 홀로 지내시겠다고 하니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그런데 무엇보다 엄마는 변화를 두려워하셨다.

나이가 드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서 잘 살아갈 용기가 사라졌다고 하신다.
"나도 네 나이 때는 모험심도 많았고, 또 그때는 이사도 자주 다녔지. 그 시절에는 너희들 안고 업고 짐 싸서 그렇게 이사도 자주 다녔는데 지금은 그럴 마음도 생기지 않고 무섭다. 나는 그냥 이렇게 살던 곳이 더 편안해. 내 집이 그냥 최고야. 이게 더 편안하단다"

문득 오래된 앨범속의 엄마의 젊을때 모습을 본다. 그 시절의 엄마는 늘 활기차고 잘 웃었다.
예쁘고 키가 컸던 엄마는 어느새 할머니가 되었다. 손 마디의 주름, 거친 얼굴을 본다. 엄마는 익숙한 것이 더 편안한 나이인 것이다.

엄마를 모시고 제주로 가려던 나의 설득은 산산조각 되었고 계획도 모두 무산되었다.
잘 알던 동네 구멍가게도, 오며 가며 인사하고 지내던 동네 미용실 아주머니도, 철물점도, 동네 빵집도, 과일가게도, 단골이 되어버린 병원도, 익숙하던 길을 떠나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어쩌면 엄마의 나이에서는 큰 모험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무엇일까? 변화보다는 익숙함을, 모험보다는 지금 그대로를 유지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제주에서 같이 살고 싶은 소망은 이뤄지지 않을 것 같다. 엄마와는 반대로 나는 도시가 싫으니 나 또한 무작정 내 생활을 포기하고 제주를 떠나 도시로 갈 일도 없을 것 같다. 우리는 어쩌면 육지와 제주를 오며 가며 마음을 어루만지며 지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육지에 있는 친정엄마. 평생 힘든 일로 고생을 많이 한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은 가까운 듯, 멀다.
엄마 안녕하고 헤어져 돌아올 때는 어디 외국이라도 가는 듯 그렁그렁 서로의 눈망울에 맺히는 굵은 눈물이 흐른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가까이 사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일까?

나는 오늘도 내가 하고 싶은 것들과 나의 삶 속에서 내가 너무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딜레마에 빠지고 만다. 친정엄마를 보고 내려오면 한동안 제주에서 나의 마음은 무거운 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앉는다.

<엄마 아프지 말고 행복하게 머물러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