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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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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고립되었나요?

지금 고립되었나요?

by 라라 여행작가 2018.01.17

몇 년 전, 태국을 거쳐 브라질로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아시아에서 남미로 가는 일정의 비행기를 탄 적이 있었다. 태국 여행을 마치고 방콕을 출발해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를 약 7시간가량 경유하는 저렴한 비행기를 탔던 나는 시간이 많은 여행자였다.

7시간을 공항에서 기다리고 다시 갈아탄 브라질행 비행기는 몇 시간 후 엉뚱하게도 브라질이 아닌 아프리카 토고란 땅으로 불시착했다. 항공사의 내부 사정으로 인해 갑자기 불시착한 그곳에서 기내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저녁 늦게까지 비행기 안에 있어야만 했다. 나는 방콕에서 탔지만 누군가에게는 유럽에서 출발해 방콕을 경유했던 그 비행기는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직업과 다양한 일들로 비행기를 탑승한 사람들이 있었다.
기내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화를 내며 승무원과 기장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중 유독 눈에 띄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나 같은 장기 여행자들이었다. 나는 물론이고 미국, 호주, 아일랜드, 한국에서 온 다섯 명의 배낭여행자들은 그 누구도 불평불만하지 않았는데 생각해보면, 시간이 여유로운 여행자였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아예 편안한 자세로 앉아 떠드는 사람들 사이로 책을 읽거나 종종 서로의 여행 루트를 물으며 잡담을 했다.
요 며칠 제주는 펑펑 내린 눈에 쌓였다. 아니 묻혔다고 해도 될 것이다. 중산간에 사는 친구들은 마을에 고립되어 나오지를 못했다. 시내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친구는 어쩔 수 없이 며칠 동안 문을 닫았다. 우리집 숙소 손님들은 예약을 취소하거나 서둘러 비행기를 타러 떠났지만 그날 뉴스에서는 공항이 잠시 폐쇄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이따금 돌풍이나 눈으로 인해 놀러 왔던 관광객들은 제주의 섬에 갇힌다. 하늘길이 닫히면 역시 바닷길도 닫히니 배를 타고 나갈 수도 없다. 그야말로 고립이다. 여기 살고 있는 나와는 다른 관점으로 느껴질 두려움일 것이다. 중산간에 사는 친구는 펑펑 내린 눈에 그곳에 갇히고 잠시 한 템포 쉬어간다.
하늘의 뜻에 열리고 닫히는 제주의 출입구. 둥그런 제주도는 육지와 붙어 있지 않으니 언제나 고립의 나날이지만 눈이 내렸던 모습은 포슬포슬 너무나 아름다웠다. 돌담과 귤 나무에 세상 공평하게 똑같이 내린 눈은 우리가 고립되었다는 사실도 잊은 채 멋진 풍경을 보여줬다.
아! 아까 아프리카 불시착은 어떻게 되었냐고? 약 5일 정도 항공사에서 제공해준 호텔과 식당에서 아주 편하게 지내며 무사히 브라질에 도착했다.
하지만 즐거웠던 배낭여행자 5인을 제외, 다른 나라에서 왔던 많은 사람들은 대책 회의에, 소송 준비에, 피 터지는 5일을 보내고 브라질행 비행기에 탑승했다는 이야기. 시간이 많았던 여행자들은 무료 제공해주는 공짜의 향연을 즐기며 덤으로 얻은 여행지 토고의 거리와 시장을 신나게 구경하느라 바빴다. 짧은 5일의 고립은 내게는 행복했던 시간이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