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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이야기

이주민이야기

선택, 호기심, 풍요로웠던 제주

선택, 호기심, 풍요로웠던 제주

by 라라 여행작가 2018.01.31

#01
겨울이 끝나기 전, 제주는 한바탕 이사를 하는 짧은 며칠, 약 일주일이 존재한다. 이 기간에는 많은 신들이 하늘로 올라가 마음껏 일을 처리해도 된다는 믿음으로 이사와 마찬가지로 집 수리 등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신구간에는 이사업체나 입주 청소업체 등도 덩달아 호황을 누린다고 알려진다.
처음 제주에 내려올 때, 신구간을 훨씬 넘긴 봄에 집을 구하느라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사시사철 집을 구하는 건 가능하지만 아무래도 제주도 내에서는 조금 더 괜찮은 집들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건 기분 탓일까?

지금도 제주로 이주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나는 주저 없이 “신구간에 한번 알아봐. 특히 제주는 부동산 같은 곳보다 지역 정보지나 신문을 보면 좋아, 왜 교차로 같은 신문 말이야"라고 알려준다.
처음 왔을 때, 신구간도 몰랐고, 집은 부동산에서만 구하는 줄 알았던 내게도 누군가 이런 말을 해줘 많은 도움이 되었다. 생소하면서도 재밌는 문화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마저도 많이 느슨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신구간이 다가오면 평상시보다 많은 매매와 매물, 년세, 집수리 등이 성행하고 있으니 흥미로운 그림이다.
#02
얼마 전 다녀왔던 남도 여행은 많은 걸 깨닫게 해주었다. 육지와 제주 사람들이 만나 어우러져 사는 제주란 섬은 결코 어느 나라와 견주어도 절대 꿀리지 않는 매력적인 곳이란 걸 알게 되었다. 시골 마을이란 곳에 노인만 남은 곳이 아닌 어린아이가 자라며 살아간다는 것은 마을의 활력이고 기쁨이다.
아이가 있다는 것은 그 생명의 잉태로 여러 것들이 존재하게 된다. 유치원이 생기고, 학교가 생기고, 병원이 생기고, 버스가 오간다. 젊은 사람들이 모두 떠나가 버린 동네가 아니라 그들이 어우러져 살 수 있다는 것은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으니 활력이 넘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그로 인해 관광객이 찾아오고 그들을 위한 상업 수단이 생기는 것 또한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이것이 제주가 다른 여타 지방의 모습과 확연히 다른 적절한 문화가 뒤섞인 매혹적인 곳인 것은 틀림없다.
#03
누군가는 이주자를 싫어하고 누군가는 현지인과의 교류가 어렵다고 말한다. 모든 존재의 완벽한 타협이 존재할 수 있을까?
그것은 불가능할지도,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지금도 어딘가 누군가는 제주를 위해 고민을 하며 다양한 방향성을 모색하고 있다. 그래서 그 어느 곳보다 돋보이는 도시가 제주가 아닐까?
여전히 낯설고 여전히 알고 싶은 것 많은 섬 제주. 이주자와 현지 토박이 모두 마음을 열고 이 섬의 개성을 잃지 않고 잘 지켜나갔으면 좋겠다. 제주에 내려온 지 6년째가 되었다. 이제는 도시를 잊을 정도로 이 정도의 적당한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온전한 나의 시간을 살뜰하게 보낼 수 있는 곳이 제주만한 곳이 있을까.
적당하게 자리 잡은 도시, 적당하게 푸근한 시골 마을, 사시사철 파도가 넘치는 바다, 풍요로운 자연, 신이 많은 낯선 문화 속에서 오늘도 많이 배운다. 다수의 이주자가 그렇듯, 사랑해서 내려왔던 제주는 아니었다. 그저 살다 보니,사랑하게 된 나의 푸른섬 제주. 이제는 먼 타국이 아닌 제주란 섬이 있어 더 이상의 나의 방랑은 끝내도 된다.
세상을 떠돌던 여행자들이 결국 마지막 종착지로 머문다는 제주도. 제주는 여행자의 마지막 종착지란 그 말은 정말 맞는 말이다. 제주에서의 하루하루, 묵직한 알맹이가 남아 삶이라는 그릇들을 채우고, 또 비워가며 우리네 생이 만들어져 간다.
우리에게 제주가 있어 정말 다행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