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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이야기

이주민이야기 : 제주에세이

내사랑 오일장

내사랑 오일장

by 라라 여행작가 2019.02.22

어쩌다 손님이 없는 날이면 나는 더 바쁘다. 그동안 지치고 힘들어서 미루거나 하지 못 했던 일들을 바지런히 하는 유일한 날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때마침 내가 좋아하는 제주시 오일장이 맞물리는 날에는 이른 아침부터 내 가슴은 두근거린다. 아. 얼마나 가고 싶었던 오일장이란 말인가. 특히나 오늘처럼 그동안의 황사가 사라지고 찬란한 빛이 들어오는 아침이면 나의 거실은 빛나는 햇살이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이건 이 집의 치명적인 매력이다. 밀린 빨래며 이불을 정리하고 화장실 청소까지 마친 후 나는 나풀거리는 치마를 입고 장에 가는 버스에 오른다. 가방 안에는 천으로 된 장바구니를 집어넣고.
그동안 들기름의 매력에 푹 빠져 살았는데 드디어 직접 들깨를 짜서 소주병에 담아주는 집에서 한 병을 구입한다. 장이 서는 날은 한 두 번 오는 것도 아닌데
늘 구석구석 관찰한다. 이제 곧 제주는 고사리철인데 고사리 앞치마와 고사리 모자, 꽃무늬 장갑도 하나 가지고 싶다. 몇 날이고 인터넷으로 구경만 하던 대나무로 짠 바구니도 가지고 싶은 아이템. 빈손으로 돌아오면 왠지 허전한 오일장. 누군가 함께 하면 즐겁고, 혼자이면 더 여유 있고 자세히 관찰할 수 있어 즐거운 곳이 오일장.
들깨가루를 장에서 발견하고 하나 주세요, 말하자 주인아주머니는 미리 갈아두면 상할 염려가 있다는 이유로 봉지를 열고 믹서기에 다시 갈아주었다.
“즉석에서 갈아야 되마씸. 그래서 지금 가는 거우다. 살 때 바로 다시 한번 갈아줘야 되마씸” 보들보들하게 갈린 착한 들깨가루도 딱 먹을 만큼, 오천 원어치 구입한다. 양으로 승부하는 중국산 옥수수차는 이천 원, 구수한 맛이 일품인 메밀차 한 봉지도 구입한다.

봄이라 꽃가게 앞은 알록달록 예쁜 화분이 가득하다. 노란 후레지아 화분도 하나 데려온다. 그리고나서 마지막은 오일장의 최고 묘미인 낮술을 마시기! 약속한 시간에 나온 친구와 만나 장터의 식당에 들어간다. 뜨끈하게 말아주는 국밥에 제주 막걸리가 빠지면 섭섭하지. 친구는 '너는 원래 서울에 살 때도 이런 장을 좋아했니? '라고 물었다. 그럼 물론이지! 나는 지난날들을 회상하며 막걸리를 한 잔 마셨다.
홍대에서 버스를 타고 찾아갔던 광장시장의 단골 만둣집에서 만둣국을 한 그릇 먹고 꽤 괜찮은 패턴의 몸빼 바지와 치마를 두어 장 사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거기다 가격은 또 얼마나 저렴한가. 나는 그 꽃무늬 몸빼 바지에 워커를 신고 홍대 거리를 잘도 누비고 다녔다. 광장 시장을 가는 건 서울에 살 때 내게 큰 낙이어서 한 밤에도 홍대를 벗어나 지인들과 2차, 3차로 가는 곳이기도 했다. 열네 살 때는 성남의 모란장에서 친구와 함께 가방을 메고 시장 구석구석을 구경 다니고 사람들에 둘러쌓인 약장수를 구경하고 그릇 가게를 탐하다가 장날이 끝나기만을 기다려 돗자리를 펼치고 도자기를 파는 아저씨 옆에서 도자기 화병 같은 것을 천 원에 두세 개 얻어오곤 했다. 장이 파하는 시간이면 도자기 아저씨는 물건을 싸게 팔았으니까.
친구와 막걸리를 사이좋게 한 병씩 마시고 나는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우리집에 찾아오는 여행자 게스트들에게 늘 추천하는 곳 제주시 오일장! 볼 것 많고 정겨운 제주의 큰 재래시장, 그곳은 제주의 본 얼굴을 그대로 보여주는 그 어느 곳보다 흥미로운 곳이다. 즐겁고 정겨운 오일장. 내 시간과 맞는 날은 마치 로또에 걸린 것 같은 제주시 오일장! 고마운 오일장!

여행작가, 라라.
애월에서 소규모숙소<달빛창가302호>를 운영, 여행서 <연애하듯 여행>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