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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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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릉 편지 왔어요

따르릉 편지 왔어요

by 라라 여행작가 2019.03.07

집에 전화기를 설치했다. 이 전화는 따르릉 벨이 울리면 전화기 안의 내장된 두 개의 황동공을 쇠구슬이 치고 울리면서 소리가 나는데, 1970년대식 아날로그 벨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전화가 없으면 불편한 사람이 누구일까?

요즘 같은 1인 1전화기를 소유하고 사는 시대에는 전화기가 없는 사람보다 전화기를 가진 사람이 더 불편할 것이다. 제주에 내려와 살면서 한때 나는 작정하고 휴대폰 없이 2년을 살았다. 전화가 없어지자 나는 비로소 평화로웠다. 생각해보면 불편한 건 내가 아니라 그들이었다. 용건이나 할 말을 <빨리빨리> 하지 못해 다들 불만이 많았다. 간혹 약속 장소에 늦게 도착이라도 하면 빨리 말을 전달하지 못해 안절부절 했는데 그건 내가 아니라 전화를 가진 그들이었다. 뭐 금방 나오겠지 하는 나와는 달리 더 불안한 건 전화기를 가진 타인이었다. 빨리 말을 전달하지 못하니 마음이 불편하다고 했다.
그 당시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었는데 늘 편지나 이메일을 보내겠다고 했었다. 그렇게 생활하면서 늘 마당의 우체통을 살펴본다. 우체국 아저씨가 지나가는 시간은 오전 1시에서 2시 사이. 난 어느덧 그 시간대를 기다리곤 했다. 누군가의 편지가 도착해 있거나 엽서가 꽂혀 있는 순간은 기분이 참 기쁘다.

두 달 전 묵고 간 게스트가 안부를 묻는 예쁜 편지와 함께 동봉한 우리집의 여러 사진, 서울에 계신 엄마가 돋보기 안경을 끼고 펜을 꾹꾹 눌러 쓴 장문의 편지, 멀리 상하이에 사는 중국 게스트가 보내온 엽서, 아르헨티나에서 만났던 영국친구가 여행 중에 보내온 꽤나 이국적인 도시의 엽서도 도착해 있다. 나는 종종 우표를 만져보기도 한다. 봉투에 씌여 있는 수취인을 읽어내며 마당에 걸터앉아 봉투를 뜯으면 내 마음은 한없이 착해진다. <빨리빨리>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사색의 시간을 안겨주는 것은 시간이 더 필요한 느림의 순간들 아닐까.
초등학교 3학년 때 다이얼로 된 집 전화를 설치하고 그 몇 년 후에는 무선 전화기라는 게 생기고 집안에 벨이 울리면 신기해서 너도 나도 서로 받겠다고 후다닥 뛰었는데 요즘은 집전화를 보기가 어려워졌다. 이제는 집안이며 버스, 거리에서, 카페에서, 영화관에서 사람들이 좀비처럼 스마트 폰만 쳐다보고 있는 모습은 참으로 익숙한 모습이 되었다. 빠르고 편리하게 일을 처리하고 다양한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어느새 우리는 그것이 없으면 안되는 노예 아닌 노예가 되었고 개인의 모든 신상정보를 안고 있는 이 작은 폰은 사라지기라도 하면 큰일 나듯 안절부절 하게 되는, 거대한 개인의 비밀의 블랙박스.

휴대폰 보다는 따르릉 집전화, 내가 부재중이면 나중에 다시 걸어줄래요? 아니면 우리 편지할까요? 순식간에 받고 확인하는 빠른 스마트 폰이 될 수는 없지만 우리 조금 느려져 볼까요? 제주에 있다는 건 그래서 더 느려질 수 있어 좋아요. 잘 어울리지 않나요?

내가 살아가는 삶이 사회적 환경이나 타인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길 늘 바란다.조금 느리거나 조금 모자란듯해도 내가 하고자 하는 것들을 지키고 유지하며 가기를. 내 정체성에 흔들림 없이 모든 걸 지켜나가길.

# 따르릉. 당신의 마음 천천히 내게 보여주세요.

-여행작가, 라라.
애월에서 소규모숙소<달빛창가302호>를 운영, 여행서<연애하듯 여행>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