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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이야기

이주민이야기 : 소소한 제주 이야기

사라진 벚꽃 나무

사라진 벚꽃 나무

by 라라 여행작가 2019.03.22

제주의 3월은 찬란하다. 생명이 잉태되는 찬란한 순간 만물은 변화한다. 말을 걸고 생에 물음을 던지는 시기 봄. 그렇다. 봄은 시작하는 모든 것의 첫걸음 같다. 나의 작은 정원은 크고 작은 생명들이 태어났다. 느닷없이 노란 수선화들이 언제 거기 있었는지 꽃을 피우고, 이웃의 매화나무는 느닷없이 팝콘 터져 나오듯 팡팡! 그 여린 꽃잎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보면 여기저기 어느새 색이 입혀지고 꽃망울을 터트리고 초록이 더욱 진하게 눈을 뜬다.
제주는 봄이 오면 여러 행사와 축제가 열리는데 그중 벚꽃축제는 눈 내리듯 하늘이 분홍색 꽃으로 가득 찬다. 내가 사는 하귀리에서 가까운 장전리는 어느새 벚꽃축제 마을로 자리 잡아 그 자태를 며칠간 뽐낸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친구가 사는 장전리에는 축제를 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그때는 관광객도 없고 사람들이 많이 몰리지 않아 우리는 여유 있게 드라이브를 하거나 분홍 하늘을 만끽하며 참 천천히도 걸어 다녔는데 지금의 장전리는 축제로 참 많이 부산해졌다. 역시 아름다운 것은 금방 알려지는가 보다.
그런데 굳이 남의 마을까지 가지 않아도 우리 마을에도 끝내주게 멋있는 벚꽃 나무 길이 있었다. 하귀 우체국부터 시작된 하귀리 도로변은 봄이 되면 벚꽃 나무로 황홀할 지경이었다. 밤에 보아도 눈꽃처럼 풍성했던 아름다웠던 벚꽃나무. 바람이라도 불면 이 작은 마을은 벚꽃 날리는 장면으로 참으로 사랑스럽고 낭만적이었다.

나는 일부러 봄에는 자주 나가 우리 마을을 걷고는 했다. 오고 가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봄을 닮은 행복이 함께 보였다. 사람들은 서서 사진을 찍고는 했다. 관광객을 불러 모으며 축제를 하는 곳은 아니어도 현지인들 오가는 작은 우리 마을의 그 벚꽃 나무 길이 나는 소박하니 좋았다. 그런데 그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마을의 벚꽃 나무 길이 사라졌다. 약 1년 전, 이맘때 무슨 연유인지 큰 포크레인과 트럭이 오가며 그 나무들을 감쪽같이 잘라 버렸다. 그때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왜 이 나무를 베는지 잘 알지 못했다. 길이 울퉁불퉁해서 민원이 들어온다는 사유, 상가가 많아 주정차 문제로 도로를 확장해 도로 개선 공사가 이뤄졌다는 사유, 해마다 가지치기를 따로 하는데 그런 것들을 함께 개선하기 위해 두루두루 베어버렸다는 그 사유, 사유, 사유!!!!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그 민원과 사유라는 것을 대체 누가 했느냐고 서로 물었다. 그곳은 그대로였고 사람들도 그대로였는데 달라진 건 나무가 사라진 마을이다.
우리는 도대체 얼마나 더 편리하고 빠르게 살아야 하는 걸까? 여전히 나의 마을은 자동차도 사람도 늘 느리고 천천히 달리는 곳일 뿐이다. 결국 우리에게는 그 찬란한 벚꽃 나무가 사라진 마을이 된 것뿐이다. 봄에 찾아오는 나의 손님들이 우리집에 찾아올 때마다 극찬을 마지않았던 이 마을의 풍경은 이제는 시멘트 공사 잘 된, 도로의 조금 넓어진, 마을 입구 일뿐이다. 모든 것들이 그대로지만 지우개로 지워버리듯, 낭만 가득 찬란하게 우리 마을을 안아주던 벚꽃나무는 이제는 볼 수 없게 되었다. 비자림의 어느 구간이 사라지고 어느 숲이 포크레인으로 난도질당하는 제주도. 과연 우리가 지키고 풍족하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여행작가, 라라
애월에서 소규모숙소<달빛창가302호>를 운영, 여행서<연애하듯 여행>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