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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이야기

이주민이야기 : 소소한 제주 이야기

딱 필요한 만큼의 행복

딱 필요한 만큼의 행복

by 라라 여행작가 2019.05.07

일 년 전쯤인가 일본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리메이크한 한국판 리틀 포레스트가 개봉했었다. 자신만의 삶을 살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온 주인공 혜원은 정성스럽게 밥을 하고 농작물을 키우면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을 지낸다. 한동안 이 영화가 개봉되고 소박하지만 잘 먹고 행복하게 사는 것의 화두를 두고 주인공 혜원처럼 젊은 친구들의 시골의 삶이 이슈화되기도 했다. 그만큼 도시의 빠르고 바쁜 삶은 사람들을 쉽게 지치게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라 고향의 개념을 잘 모르는 나는 어렸을 때부터 막연하게 시골 생활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었다. 제주를 선택해 내려와 살면서 그 로망은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마당 텃밭에 남편과 나, 두 식구 또는 손님이 올 때 바로바로 뜯어 먹을 수 있는 샐러드 밭은 작지만 꽤 충분했다. 겨울에는 이웃 친한 형님에게 구한 말똥을 흙에 잘 솎아 주기도 했다. 가능한 화학 비료나 약을 치지 않아 이웃의 거대한 마늘밭에서 자라는 작물들보다 느리고 천천히 자라지만, 가볍게 흙 털어 한 번 씻어서 준비하는 샐러드 풀은 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처음에는 호기심에 둥근 호박이며, 여주, 방울토마토, 청양고추, 참외, 수박, 양파, 감자 등 되는대로 마구 심었다. 처음 해보는 쟁기질이 서툴러 장갑을 끼고 손으로 작업을 해도 어느새 내 손톱은 까맣게 흙투성이 손톱이다. 해가 거듭될수록 나는 자연스럽게 작물을 키워내는 나름의 노하우를 알게 되었다. 계절별로 무엇을 언제 어떻게 심는지, 흙의 영양분과 자연농법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봄이 오는 시기면, 나는 서두르지 않고 계획적으로 작물을 심는다. 욕심 부리지 않고 딱 필요한 만큼의 모종을 심거나 씨앗을 뿌렸다. 한때 주먹구구식으로 텃밭을 관리해 한 여름이면 정글처럼 자라난 작물들 사이로 정신없었는데 해를 거듭할수록 꼴에 이것도 작은 밭이라고 점점 야무진 모양새를 하고 있는 걸 보면 내 자신이 다 대견스럽다.
올해는 샐러드 위주로 적상추를 비롯해 다살이 풀인 당귀와 치커리, 루꼴라, 로사 이탈리아나를 심었다. 담벼락 쪽으로 좋아하는 청양고추와 방울토마토를 심고, 한켠에 부추와 파, 로즈마리를 재배하고 있다. 아침마다 손님들 조식 준비할 때 하나씩 톡톡 뜯어와 올리브 오일과 발사믹 식초에 살짝만 버무려 낸 신선한 샐러드를 만든다. 아삭아삭 방금 막 뜯어온 내 작은 정원 속 샐러드 풀은 딱 필요한 만큼 우리의 식탁을 풍성하게 해주고 있다.

넘치지 않게, 딱 필요한 만큼의 단정한 행복. 벌레를 툭 털어내고 뜯어오는 자연 농법의 작물들은 제주의 내 삶을 소박하지만 참 윤택하게 해주는데 일조하고 있다. 흙이 촘촘히 박혀있는 거친 손톱이지만 봄여름가을겨울 딱 필요한 만큼의 먹을 것을 주는 내 작은 텃밭에서의 일은 재미있고 즐겁다. 행복이 별거 있나, 내 옆에서 눈 말끄러미 뜨고 곁에 있는 게 바로 요놈, 행복이더라! 나는 그저 행복하다. 딱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되니까.
-여행작가, 라라
애월에서 소규모숙소<달빛창가302호>를 운영, 여행서<연애하듯 여행>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