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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이야기

이주민이야기

이웃집 할머니

이웃집 할머니

by 라라 여행작가 2019.05.16

시내에 일을 보러 나간 사이 집 앞 마당에는 이제 막 뽑은 듯한 무언가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자세히 살펴보니 시금치다! 집 앞 밭주인 할머니가 요즘은 시금치를 재배중이신데, 이제 막 뜯어온 시금치를 마당에 두고 가신 것 같다.
할머니는 자주 그렇게 먹을 무언가를 두고 가신다.

우리집 앞은 이웃 할머니의 밭인데, 이곳이 꽤 넓고 확 트여 있어서 집에 앉아 바라보는 풍경이 초록초록하니 참 고즈넉하다. 5월이 되면서 한낮은 제법 해가 뜨거워졌다. 나는 이따금 앞 밭주인 할머니 할아버지가 밭일을 하실 때 가끔 따뜻한 커피나 갓 만든 머핀, 시원한 미숫가루 등을 건네곤 한다. 하루 종일 이른 아침부터 커다란 챙 모자를 쓰고 밭일을 하시는 이웃 할머니는 내가 음식이 담긴 쟁반을 건넬 때마다 “아유, 뭘 또 이런 걸”하시며 흙 묻은 손으로 받으신다.
나는 “천천히 드시고 나중에 주세요”라고 말하는데 할머니 내외분은 잠시 그늘에 앉아 음료와 빵을 드시며 도란도란 조용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웃 할머니는 내가 하귀리에 이사 온 그날부터 조곤조곤 잘 챙겨 주셨다. 이 육지것은 처음에는 알아듣기 힘든 제주 사투리로 대화의 반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지금은 눈치껏 나도 한마디 할 줄 알게 되었다. 할머니는 오이며 호박, 무, 감귤 같은 먹을 것들을 조용히 현관 앞 마당에 두고 가실 때가 많았다. 나는 따로 드릴 것이 없어 가끔 떡이나 과일, 쑥빵 등으로 인사하게 되었다.
하루는 내가 서투르게 키우고 있는 우리집 텃밭을 보신 할머니가 비료를 주시며 상추들 잘 자라라고 나눔을 해주셨다. 그때는 제주에 내려와서 밭일에 대해 잘 몰랐던 때라 땅에 무언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는데 할머니가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셔서 참 고마웠다. <나무는 이 부분을 조금 잘라줘야 해, 주기적으로 쭉쨍이들은 과감히 없애, 고추는 심고 나서 며칠 지나면 밑에 새잎을 따버려> 등등 이런 것들은 초보인 내가 알 수 없는 텃밭 노하우였다. 이후로 이제 나도 제법 텃밭 일구는 법을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그건 아마도 내게 따뜻한 눈빛으로 가르쳐주던 이웃 할머니 덕분이다.

매일 집 앞에서만 할머니와 마주치다가 시내 가려고 나갔던 버스 정거장에서 할머니를 만나 반갑게 인사했다. 그런데 할머니가 나를 본척만척 생뚱맞게 바라보고 마신다. 다음날, 할머니가 집에 찾아오셨는데 혹시 어제 버스정거장에서 인사하던 아이가 너였냐고 하신다. 할머니는 매일 집에서만 보다가 갑자기 얼굴에 분칠하고 빨간 루즈를 바르고 한껏 뽐을 내서 너를 못 알아봤다, 하신다. 하영 이쁘게 하고 어디 갔었냐고 인사 못해서 미안하다 하시는데 나는 그만 쑥스러워 크게 웃었다.
나는 오늘도 하얀 우유와 마을 어귀에서 사온 찐 빵을 들고 밭으로 간다.
“할머니 할아버지, 이거 들고 쉬었다 하셔요!” 5월의 태양을 받으며 오늘도 열심히 밭일을 하시는 이웃 내외분의 얼굴은 송글송글 땀이 반짝인다. 서로가 잘 챙겨주고 인사하는 관계, 이웃. 그것은 그저 그 느낌만으로 행복한 정이 아닐 수 없다. 할머니가 쟁반에 당근 몇 개를 얹어 다시 돌려주시며 말씀하신다.
“하영 잘 먹었다게! 곱닥한 마음 고마워”

-여행작가, 라라
애월에서 소규모숙소<달빛창가302호>를 운영, 여행서<연애하듯 여행>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