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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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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사는 법

고양이와 사는 법

by 라라 여행작가 2019.06.03

길을 가다 문득 발걸음을 멈춘다. 족히 아흔은 되어 보이는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마당에 있는 그릇에 사료를 덜어내고 계신다. 그 곁에는 길고양이로 보이는 고양이 서너 마리가 야옹거리며 울고 있다. 할머니께 여쭤보니 키우는 건 아니고 이렇게 가끔 밥하고 깨끗한 물을 주는데 와서 먹고 간다고 한다. 처음에 아기 고양이가 하도 울어서 밥을 주기 시작했더니 어디서 여러 마리가 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가끔씩 나이 드신 분들은 고양이들을 내쫓는 모습만 보다가 그 모습을 보니 할머니 얼굴도 인자하시고 너무 따뜻해 보였다.
나도 고양이를 두 마리 키우는 집사이자 애묘인이다. 길에서 만나는 고양이들을 보면 눈을 깜빡하고 인사 나누고 싶은데 사람만 보면 경계심을 풀지 않고 도망가는 녀석들을 보면 서운하기도 하다. 하기야 얼마나 많은 수모를 겪었을까? 그저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돌을 던지고 나뭇가지로 저리 가라고 하니 길고양이의 험한 삶도 인간사 다를 바 없이 힘들어 보인다.
예전에 다른 나라에서 만났던 고양이들이 생각난다. 나는 이따금 그 나라의 인식 수준을 보려면 길고양이를 보라고 말하곤 했었다. 그리스 어느 섬에서 내가 만난 고양이들은 하나같이 사람을 경계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골목골목 예쁜 그릇에 누군가 덜어둔 사료와 물그릇이 있었다. 고양이들은 여행자처럼 어슬렁거리며 사료를 조금씩 먹고 다시 길을 떠나다 햇볕 좋은 곳을 발견하면 늘어져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평화롭고 아름다워 손을 뻗어 이마를 만져도 고양이는 전혀 놀라거나 도망치지 않았다. 그저 마음껏 나를 만져라 배를 벌러덩 보여주기 일쑤였다. 그곳의 섬에서는 사람들이 길고양이도 인간과 함께 사는 걸 당연히 인정하고, 그들을 위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사료를 준비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곳의 고양이는 사람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기지도 않았고 함부로 거리의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봉투를 헤집지도 않았다. 거리는 더없이 깨끗하고 햇살은 따사로운 그리스의 섬에서는 사람과 고양이가 함께 공존해서 그 자체로 참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는 걸 느낄 수 있다.

아마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여유가 아닌가 싶다. 유럽에 어느 나라에는 길고양이를 위해 일정 부분 식량을 마당에 두도록 법률로 제정된 곳도 있다고 한다. 내가 만난 세상 여러 곳의 고양이들은 우리 인간처럼 사는 법도 각기 다르고 때로는 고단하기도 하다.
적어도 여기 푸른 섬 제주에서는 고양이를 너무 경계하고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제주의 섬에서는 고양이들도 어슬렁 어슬렁 평화롭고 따뜻한 사랑을 받아 누가 보아도 참 사랑받고 살고 있구나, 느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은 아마 이곳에 사는 우리의 수준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기도 하니.
너무 경계하고 살아 사람을 보면 도망가다 로드킬 당하는 고양이가 제발 없어졌으면, 더 이상 쓰레기통을 뒤지지 않고 살아간다면 너는 도둑고양이가 아니라 그냥 길에서 사는 고양이라고 우리가 함께 만들어 나간다면, 그리스의 섬처럼 제주란 섬도 여유로움으로 가득 찰 텐데 말이다.
-여행작가, 라라
애월에서 소규모숙소<달빛창가302호>를 운영, 여행서<연애하듯 여행>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