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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이야기

이주민이야기 : 소소한 제주 이야기

엄마를 닮은 꽃기린

엄마를 닮은 꽃기린

by 제주교차로 2019.06.06

홍대 살 때 집 근처 작은 꽃집에서 구매해서 키우던 꽃기린, 제주에 내려오면서 다른 반려식물들처럼 함께 가져왔었다. 그러니까 이 아이는 나와 약 8년 정도의 시간을 함께 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느 날 달빛창가302호 손님이 보고는 저 아이는 무언가요? 물었을 때 “꽃기린”이라고 답하니 여태 보던 아이들과 다르게 생긴 것 같다며 넌지시 꽃기린을 바라보았다.

<그렇겠지요, 벌써 7년이 다 되어가요. 물론 처음에는 이렇게 생기지 않았지요. 그래도 봄이 되면 작고 여린 분홍색, 붉은색 꽃을 피우고 지금도 새순이 돋았다가 사라지고를 반복해요. 계속 살아있는걸요, 다만 조금 나이 들었을 뿐이에요.>
이렇게 말하고 나서 나는 한번 꽃기린을 쓱 만져준다. 우리는 서로 교감하는 오래된 관계, 나의 소중한 반려식물. 혼술을 먹다가 바라본 꽃기린의 곱은 등을 본다. 휘 둥글게 굳은 등은 힘겹게 서서 다시 잎을 틔우고 묵묵하게 서있다. 그 모습이 마치 엄마를 닮았다. 모진 세월 이겨내고 늙어가고 힘이 없지만, 다시 잎을 틔우는 그 모습은 나의 엄마를 떠오르게 한다.
얼마 전에 엄마가 제주에 왔다 갔다. 엄마가 떠나고 나는 한참 힘들었다.
어느 세월 늙어버린 엄마, 어느새 엄마는 내가 아기였을 때 그때의 상황들을 자주 표현한다. 이제 내가 나이가 들었으니 들려주는 이야기인 걸까? 가부장적이고 아들이 귀하다는 집안에 시집와 내 위로 언니가 태어나고 두 번째로 내가 태어났을 때 엄마는 또 딸을 낳았다는 이유로 가뜩이나 힘겨웠던 시절, 시집살이를 했다. 아빠는 나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고 그로 인해 나는 눈치가 빠른 아이로 자라났다. 밑으로 남동생이 태어난 건 그래서 다행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의 잉태는 엄마의 인생에 있어 많을 걸 포기하게 하였거나 절망이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어쨌든 세상 밖으로 나왔다.

빛나던 시절 다 흘러가버린 엄마의 인생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엄마가 다시 서울로 떠나고 많이 울었다. 한동안 며칠 밤을 잠을 이루지 못했다. 문득 꽃기린을 보며 휘 둥글게 곱은 등, 그 그림자는 엄마가 생각이 난다. 엄마와 닮았다.
사랑하는 엄마, 한때 나는 엄마가 없는 인생을 생각하기도 싫을 정도로 엄마 생각을 많이 했는데 머리가 굵어지고 내 멋대로 살기 시작하면서는 나 자신,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그것이 맞는다고 생각을 맞바꾸기도 했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나도 무엇도 못 할 것 같았으니까. 과연 무엇이 맞을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각자의 생에서 각자의 아침과 밤을 보내고 전화로 안부를 묻는다. 때로는 마음과는 다른 말, 말보다 앞서가는 마음을 안고 엄마와 난 그러한 관계. 늘어가는 잔소리, 따뜻하지 못한 말을 하지만 마음속에 이젠 가녀린 꽃잎으로 남아있는 엄마!
그래도 엄마, 사라지지 말고 오래오래 나하고 늙어가자. 엄마, 엄마, 엄마 !
봄밤이면 엄마도 꽃피고 싶었을 거야
뜨거워지고 싶었을 거야
철쭉 공원에서 울다 왔을 거야
왜 이제 알았을까
활짝 핀 철쭉꽃을 바라보다
엄마가 혼자 밥 먹던 봄처럼 목이 메어오는 밤
권대웅 詩 엄마의 꽃 中

여행작가, 라라
(애월에서 소규모숙소<달빛창가302호>를 운영, 여행서 <연애하듯 여행>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