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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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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다는 것

사라진다는 것

by 라라 여행작가 2019.07.08

좋은 인상에 인자하게 웃으시던 옆집 아저씨가 한동안 보이지 않는다. 뒷마당에서 빨래를 널 때 간혹 마주치기도 했던 아저씨와는 늘 가볍게 인사를 나누는 이웃이었다. 우리보다 먼저 와 이 마을에 자리 잡았으니 꽤 오래 제주 생활을 하신 듯했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일본에서 살다 제주로 이주하신 걸로 알고 있는 이웃이다. 처음 이 마을에 정착해 살아가면서 텃새 아닌 텃새가 있어 힘들었다는 이야기도 오래전에 들었다. 그래서인지 아저씨는 마을에서 조용조용하게 살아가는 듯했다. 아저씨는 나이 든 노모와 함께 살았다.
이 조용한 아저씨는 간혹 낚시 후 잡아오는 생선을 주시기도 했다. 검은 비닐봉지 안에는 고등어나 잡어가 있었다. 일본에서 가져온 커피라며 <일제 커피>라고 말씀하시며 수줍게 커피가루가 든 병을 주신 적도 있다. 봄이 와 고사리를 뜯어오는 날에는 잘 말린 고사리를 한 움큼 주셨다. 나는 이따금 빵을 구우면 따뜻한 빵을 몇 번 가져다 드렸다. 그렇게 그냥 평안하고 평범한 이웃의 인연. 아저씨의 정원은 꽃과 식물이 늘 즐비했다. 마당에 앉아 작물을 심고, 사과나무를 가지치기하며 지내던 아저씨와 만날 때면 오며 가며 가벼운 이야기 정도를 나누는 이웃으로 지내며 그렇게 몇 해가 조곤조곤 흘러갔다.

예쁜 꽃의 자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어린 숙녀그런데 얼마 전부터 아저씨가 보이질 않는다. 며칠간 처음 보는 사람들이 부산하게 그 집을 오고 가는 게 보였다. 물건을 정리하거나 쓰레기 분리수거함에 큰 가구 등이 버려지기도 했다. 내 마음은 괜스레 불안해졌다. 나는 그 상황이 무엇인지 대충 알 수 있었다. 2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그때 우리집도 그러했으니까. 차마 물어볼 수 없었던 그저 느낌만으로 눈치를 챘던 나는 홀로 남은 노모를 걱정했다. 설마, 아니겠지, 언젠가 정원 정리를 하러 오시겠지... 내 마음 한구석에는 그런 생각이 자리 잡았다. 그러다가 며칠 전 그 집에 지내시는 아주머니 한 분이 집 앞에서 만난 나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셨다. 지병이 심해지며 돌아가셨다는 이야기.
아니길 바랐던 내 마음의 작은 끈 하나가 스윽 풀리면서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이웃과 많이 말을 섞으며 지내는 편은 아니지만 아웃사이더 같은 옆집 아저씨와 우리는 그런 면으로 서로 따뜻하게 지내온 것 같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당에서 늘 보였던 웃는 얼굴의 아저씨! 죽음이란 무엇일까? 이렇게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그저 소멸되는 것이겠지. 죽음은 남은 사람의 몫이다. 남겨진 사람은 그 추억을 가슴에 안고 되새김질하며 슬퍼하는 것일 뿐, 죽음은 찰나의 순간에 소멸로써 모든 것을 대신한다.
나는 문득,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한다. 그 모든 미움과 사랑, 그리움을 뒤로하고 소멸된 한 인간의 죽음 앞에 그저 남겨진 자의 추억들만 있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제만 해도 우리 곁에 있는 누군가는 하루아침에 사라지기도 한다. 한 해 두 해 나이가 들면서 예전과는 다르게 받아들이는 생의 한가운데. 나는 문득 인사도 없이 사라진 아저씨를 생각하며 마음이 아팠다. 여전히 아저씨가 돌보던 사과나무에는 이제 작은 사과가 영글고 당귀며 곰취 같은 작물이 그 집 정원에 잎을 틔우고 열매를 만들고 있는데 아저씨는 아는지 모르는지 아저씨의 그 예쁜 정원은 여전히 싱그럽고 아름답기만 하다.
아저씨! 짧은 인연, 감사했습니다. 좋은 곳에서 편히 쉬셔요.

여행작가, 라라
(애월에서 소규모숙소<달빛창가302호>를 운영, 여행서 <연애하듯 여행>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