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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이야기

이주민이야기 : 소소한 제주 이야기

배달음식의 로망

배달음식의 로망

by 라라 여행작가 2019.07.23

시내에 사는 친구가 잠시 우리 마을에 놀러왔다. 친구는 제주가 너무 좋아서 서울에서 내려와 한 달 살기를 할 요량으로 집을 구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제주도가 너무 좋아서 단 한 달이라도 살아보겠다며 그가 구한 집은 아이러니하게도 제주도 안에서도 큰 건물에 둘러싸여 차 많고, 편리함으로 무장한 제주 시내였다. 밤늦은 시간 도착한 친구와 뭐라도 먹을까 알아보고 있는데 친구가 간단하게 배달 음식이나 시켜 먹자고 한다.
친구는 “너희 동네는 그래도 배달 음식이 가능한가 봐? 짜장면 짬뽕 먹을 수 있어? 주변에 제주도 이주한 사람들 보면 제주도 내려와서는 배달 음식 시켜 먹는 게 로망 아닌 로망이 되었다고 하더라, 나는 시내에 살아서 그런가... 그런 기분은 느낄 수 없지만 거꾸로 그런 로망 부러워! 난 집을 엉뚱한 곳에 구한 것 같아”
뾰로통한 친구의 말에 나는 조금 웃었다. 그렇지, 서울살이 지쳐서 바람 쐬겠다고 내려왔는데 차 막히고 편리함으로 무장한 곳에 자리를 잡았으니 조금 만족스럽지 못할 것이다. 나는 가끔 일상에 지치거나 지루할 때 거꾸로 시내에 나가본다. 사지도 않을 거면서 이제 막 나온 신상품이나 예쁜 그릇을 보러 시내 마트로 가본다.

거리의 사람을 보는 것도 즐겁다. 아마 두어 달에 한 번쯤 시내 구경을 나가는 것 같다.
서울 살 때 내가 살던 홍대, 서교동은 평일이나 주말이나 할 것 없이 넘쳐나는 관광객과 놀러 나온 사람들로 늘 인산인해였다. 가뜩이나 정신없는 거리는 넘쳐나는 사람들로 불편해서 홍대 주민이라고 불리던 원주민들은 사람들을 피해 나름의 공간과 거리에서 모이거나 만남을 이어갔던 생각이 난다. 슬리퍼 신고 편하게 만나던 나의 사람들, 점점 거대해지던 그 거리는 조용함을 찾던 우리들에게 불편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우린 그런 곳에 살았다.
제주에 내려오고 한동안 답답했던 마음은 3년이 지나가자 비로소 안정적으로 변해간다. 두어 달에 신상을 보러 시내에 한번 나가는 정도로 나름의 리프레시를 하고 나면 다시 기분 좋아진다. 제주 구석구석 여기저기 시골에 자리 잡고 살아가는 지인들과 이따금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지만 나는 우리 동네가 정말 좋아 어깨가 으쓱한다. 왜냐고? 우리 동네는 언제부터인가 배달 음식이 꽤 많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짜장면 짬뽕은 기본이고, 치킨에 생맥주도 언제든지 가능하다.
뭐 족발이나 아귀찜도 가능하니 이쯤 하면 우리 동네는 비버리힐즈 못지않다. 친구는 풋 웃는다. 배달 음식이 뭐라고 그렇게 진지하게 자랑을 하냐고.

“그럼, 자랑을 해야지, 밤이면 가로등 불 몇 개 켜져 있어 어두컴컴한 동네지만 적당히 바닷가도 가깝고 동네 언덕에 오르면 한라산 꼭대기까지 다 보이고, 집 앞에 초록색 옥수수밭과 콩밭이 얼마나 예쁜지, 이런 고즈넉하고 제주스러운 마을에 최고의 배달 서비스 멋지지 않니! 네가 사는 동네에서 먹는 배달 음식 하고는 달라. 여기에서는 이 모든 게 귀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니까! 이건 아마 제주 시골에 사는 사람이면 누구나 알 거야.”

우리는 어쩌면 편리함을 조금 포기하고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을 선택해서 살기로 한 만큼, 딱 그만큼의 적당한 행복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 익숙해지니 불편하지 않고 조금씩 바뀌니 어느새 나는 더욱 행복해지고 있다.
아! 이 작은 행복!
여행작가, 라라
(애월에서 소규모숙소<달빛창가302호>를 운영, 여행서 <연애하듯 여행>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