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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이야기

이주민이야기 : 소소한 제주 이야기

나도 이젠 그러려니 산다

나도 이젠 그러려니 산다

by 라라 여행작가 2019.08.20

제주에 처음 왔을 때 살던 곳은 신제주의 어느 연립주택이었다. 오래된 주택가 주변으로 고깃집이며 식당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바퀴벌레 같은 벌레가 종종 출몰했다. 본격적인 여름이 다가오자 밤이 되면 길거리에 이따금 새끼손가락만 한 큰 바퀴벌레가 더 자주 보였다. 그건 흡사 내가 인도나 동남아 여행 중에 보던 크기와 맘먹을 정도로 비슷했다.
날씨가 서울과는 다르니 바퀴벌레도 스케일이 다른가 보다 하며 놀라워했었다. 호주에 살 때는 바퀴벌레가 날아서 3층 주택으로 날아오르기도 했다. 그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 끔찍하다. 자연이 살아있는 곳일수록 바퀴벌레도 도시보다 크기가 큰 것 같은 건 나만의 생각일까?
제주에 내려가 살겠다고 했을 때 서울에서 만났던 지인이 내게 웃으며 이런 이야길 했다.
“너 그거 알아? 제주도 가면 벌레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지? 너처럼 도시만 보고 자란 사람들은 기겁을 한다고 하던데, 너 괜찮겠어?”

그 말을 한 지인은 고향이 제주인 사람이었다. 그때 나는 뭐 그까짓 벌레쯤이야 하고 한 귀로 듣고 흘려버렸다.
그런데 시내인 연동을 떠나 지금 자리 잡은 애월의 우리집은 과연 듣던 대로 더 다양한(?) 벌레가 자주 출몰했다.
흙이 있는 마당이 있어서 그런지 나는 이 집에 와서 처음으로 신기하고 요상한 벌레를 많이 목격했다. 풍뎅이만 한 꼽등이, 다리가 무시무시한 왕지네, 어디서 들어오는지 민달팽이는 왜 욕실에 앉아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몇 년 전에는 뱀 허물이 마당에 두 번이나 있어서 이게 왜 여기에 있나 했는데 알고 보니 뱀이 허물을 벗고 어디론가 간 것이라고 이웃 할머니에게 듣고 깜짝 놀랐다. 뱀을 실제로 본 적이 없었던 그때는 그 허물조차도 신기해서 마냥 바라보았던 기억이 있는데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 습한 날, 뱀이 돌담 사이에 있다가 스르륵 다른 곳으로 가는 모습을 보았다.
뱀을 처음 본 나는 신기하기도 하고 소름 끼치기도 해서 요란을 좀 떨었는데 119에 신고해야 하는 줄 알았던 내 모습에 제주도 사람들은 익숙한 듯 그냥 알아서 다른 곳으로 가니 걱정 말라고 한다. 역시나 뱀은 금방 사라졌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었다. 하지만 이제는 잘 알고 있다. 다리 모양도 생김새도 다양한 벌레들은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든 있는 법이고 뱀은 돌 많은 제주에 정말 많아서 흔하게 본다는 사실도. 제주 지역 모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한때 지네를 마리당 2천 원을 주고 구입한다는 글도 보았고, 벌레 문제 때문에 제주도 이주를 고려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도 이제는 모두 그러려니 한다.

실제로 제주에 있는 내 친한 친구는 나처럼 마당 있는 집에 살다가 아이를 낳자 도심의 신축 빌라로 들어가 버렸는데 이유는 단 하나였다. 벌레가 너무 많아서.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는 벌레 때문에 결국에는 마당 있는 곳에서 아이를 키우겠다는 꿈은 어디로 가고 그녀는 반년도 안되어 도시의 신축 빌라로 떠나버렸다.

자연이 숨 쉬고 사람 살기 좋은 제주, 누군가에게는 꿈의 로망, 누군가에게는 작은 벌레로 떠나게 만드는 곳. 나는 여전히 그러려니 살지만 밭일을 하다가도 지렁이만 봐도 한번 깜짝 놀라 귀신이라도 본 듯 소리를 지르며 어설픈 호미질을 한다. 많은 것이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달라질 것도 없는 시간들이다.

여행작가, 라라
(애월에서 소규모숙소<달빛창가302호>를 운영, 여행서 <연애하듯 여행>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