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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이야기

이주민이야기 : 소소한 제주 이야기

여름의 끝자락

여름의 끝자락

by 라라 여행작가 2019.08.30

맹렬하게 달려온 여름도 이제 막을 내리나보다. 늦은 밤, 창문을 열고 누워 있으면 창밖으로 들려오는 풀벌레 우는 소리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솔솔 부는 바람도 어느새 시원해져 이불을 끌어당겨 덮게 되는 계절이다. 여름 내내 바다수영을 하며 지냈던 몸은 어느새 까맣게 타버렸다.
눈가의 주름은 하나 더 늘어나고 여름날의 바다는 언제나 그렇듯 역동적이고 뜨겁다. 이제 바다수영도 내년을 기약하며 오리발과 스노클링 장비도 다시 정리해 창고에 잘 가져다 둔다. 거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추운지 나의 고양이들은 웅크리고 잠을 잔다. 여름이 오면서 창고에 넣어 두었던 푹신한 쿠션 방석도 다시 꺼내어 따뜻한 온기를 줄 고양이 공간도 만들어두어야 한다.
계절이 변화하는 시기에는 언제나 그렇듯 분주하다. 여름내 잘 먹었던 샐러드 풀을 정리하고 작은 텃밭을 뒤엎는 작업을 한다. 호미로, 삽으로 열심히 뒤집어주고 이제 가을 작물을 준비한다. 올겨울에는 배추 몇 개와 무 조금, 샐러드 풀을 다시 심고, 좋아하는 방울 양배추를 길러 볼까 한다.
부디 약을 치지 않는 나의 작은 텃밭이 올가을겨울에도 잘 버텨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여름내 잘 하지 못했던 잡초도 정리하고 하나둘 화초를 재정비하고 나면 이 여름의 끝자락과 완벽하게 잘 헤어질 수 있겠다.
도시에 있을 때는 그렇게 싫어했던 이 계절이 제주에 살고부터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건 아마도 맹렬하게 흘러가는 더위 속에서 모든 면이 푸른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섬이기 때문인 걸까. 여름이면 이 모든 섬의 초록은 얼마나 강렬한 초록색인지! 눈부신 초록과 푸른 바다,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방울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가을의 문턱으로 다가가고 아쉬운 마음은 이 여름날의 끝자락을 다시 마음에 간직한다.

계절을 느끼며 살아간다는 건 무엇일까?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지 않고 감성을 활짝 열어 바람과 공기를, 자연을 음미한다는 것은 건강하게 나이 들어가는 하나의 통로인 듯하다.
시간의 흐름에 대해 곱○○○어 생각해보면 주변의 보이는 것들이 모두 소중하게 우리의 일상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무엇보다 제주에 내려오고 그러한 변화에 눈을 뜨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는데 어쩌면 나는 더 생을 뜨겁게 살아가고 있지 않나 싶다. 다시 서울로 돌아간다 해도 이제는 이런 변화의 흐름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어느새 그런 사람이 되어갔다. 여름의 끝자락을 붙잡고 오늘도 열심히 우는 매미 소리도 다시 그리워질 계절, 이제 가을 준비를 한다.
여행작가, 라라
(애월에서 소규모숙소<달빛창가302호>를 운영, 여행서 <연애하듯 여행>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