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이미지

이주민이야기

이주민이야기 : 소소한 제주 이야기

어디로 갔을까

어디로 갔을까

by 라라 여행작가 2019.10.21

몇 년 째 잘 쓰고 다니던 밀짚모자가 사라졌다. 촘촘하게 엮어 만든 두터운 밀짚모자는 수년 전 남미 여행을 할 때 페루 쿠스코의 어느 작은 시장에서 여행자의 마음을 한눈에 뺏어가 지갑을 열어 모자를 사게 했다.
그 모자는 흔히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재질로 꽤 탄탄하고 무게감 있는 챙이 꽤 넓은 모자였다. 여름날만 해를 가릴 용도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 봄여름 할 것 없이 사시사철 모자를 쓰고 동네 마실을 다니고 한라산에 오르고, 오름을 오르고, 밭 일 할 때, 집 밖의 페인트를 칠할 때도 줄기차게 머리에 페루 모자를 쓰고 일을 했다. 창이 넓어서 해를 가리기 좋았는데 무게감도 좋아서 휘휘 쉽게 날아가지도 않았다.
간혹 동네에서 팜나무 잎으로 만든 베트남 고깔모자를 쓴 할머니들과 마주칠 때면 “그 모자 어디서 샀수과?”늘 불러 세워 물어보던 동네 밭일하시는 할머니들이 알아봐 주던 우리의 패션 아이템 페루에서 온 모자! 단 돈 약 5,000원으로 저렴하게 구매했던 그 모자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아마도 동네 산책 중에 가볍게 운동하다가 모자를 나뭇가지에 두고 온 것 같다. 며칠 후 모자가 없다는 것을 알고 다시 그곳에 찾아갔을 때 그 모자는 예상대로 그 자리에 없었다. 아아 세상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것 마냥 마음이 아프다. 어디로 갔을까?
소중한 모자! 혹시라도 바람에 날아갔나 싶어 들판이며 밭을 잘 살펴보기도 했지만 모자를 다시 찾는다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왜 소중한 것들은 늘 그렇듯 발이라도 달린 것처럼 내 곁을 맹렬히 떠나는 것일까? 늘 곁에 있어 익숙하기 때문에 마음은 한순간 소중함도 잊은 채 함부로 대하는지도 모르겠다. 아주 찰나의 순간 사라지는 소중한 것들.
모자를 잃어버리고 한동안 모자 없이 계절을 보냈다. 같은 모자를 찾아보려 인터넷 쇼핑도 뒤져보고 중고거래도 찾아보지만 같은 모자가 있을 리가 없다. 오천 원짜리 페루 모자를 사러 다시 지구 저 반대편 나라로 가야 하는 걸까?

마음은 이미 쿠스코의 그 작은 시장에 날아가 모자를 다시 고르는 꿈을 꾼다. 여름도 다 보내고 나서야 오일장으로 간다. 행여나 다시 우연처럼 모자를 찾을까 싶어 새 모자를 사지 않았는데 아쉬운 대로 창이 넓은 밀짚모자를 하나 사서 온다. 몇 년간 곁에 있던 그 모자와 같은 그립감과 안정감을 주진 못하지만 늦게나마 모자를 사니 그나마 조금 위안이 된다. 언젠가 페루에 다시 갈 날이 오겠지. 그때는 제주에서 산 오일장 모자를 쓰고 떠나야지. 그곳에서 페루 친구에게 제주 오일장 모자를 주고 나는 다시 페루 모자를 쓸 거야.
다시 그곳에 갈 이유가 생겼다. 마추픽추를 보러 가거나 이카 사막에 가기 위함이 아닌, 그 똑같은 모자를 사기 위해. 우리는 다시 새로운 꿈을 꾼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사소하지만 내게는 더없이 소중한 것을 위해.

여행작가, 라라
(애월에서 소규모숙소<달빛창가302호>를 운영, 여행서 <연애하듯 여행>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