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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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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8-9코스]마음이 먼저 닿는 곳, 대평리에서 시작된 길

[올레8-9코스]마음이 먼저 닿는 곳, 대평리에서 시작된 길

by 이미경 객원기자 2017.12.07

발길 닿는 곳, 눈길 닿는 곳 어디나 아름다운 장소는 있을 테지만, 눈보다 마음이 먼저 닿고, 마음 닿는 곳마다 머무르고 싶은 곳은 따로 있나 보다. 이를테면 제주 남쪽 바닷가에 자리잡은 작은 마을, 대평리가 그러하다.
올레 8코스의 끝 지점이자 9코스의 시작 지점인 대평리는 지금은 카페, 음식점 등이 많이 들어서며 예전에 비해 다소 상업적으로 변했지만 소박하고 조용한 느낌은 그대로여서 내내 머물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드는 곳이다.
대평리 옛 지명은 용왕 난드르인데, ‘용왕이 나온 넓은 들판’이란 뜻이다. 옛날 동해 용왕의 아들이 대평리에 있는 스승에게 글을 배운 뒤, 스승의 은혜의 갚기 위해 박수기정과 군산을 만들어 주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기도 한다. 제주의 동서남북이 한눈에 들어온다는 군산에 오르니 북쪽으로 옅은 안개에 묻힌 한라산이 보이고, 남쪽으로 대평리가 바다에 이르기까지 펼쳐져 있다.
해질녘, 느린 걸음으로 돌담으로 이어진 마을 골목길을 어슬렁거려본다. 박수기정의 일몰이 아담한 마을의 운치를 더해준다.
박수기정은 ‘바가지로 마실 샘물(박수)이 솟는 절벽(기정)’이란 뜻의 주상절리 절벽으로, 정상까지 오르는 길을 ‘몰질’이라 부른다. 고려 시대에 박수기정에서 원나라에 보낼 말을 길렀는데, 이 말들이 다녔던 길이라고 한다. 좁고 가파른 몰질을 따라 헉헉 올라가면 대평리 포구가 내려다보이는 평지가 나오는데, 그곳에서 본 바다는 상투적인 표현을 빌자면 그야말로 ‘영롱히 빛났다’.
박수기정에서 시작되는 올레 9코스는 숲길, 산길로 이어진다. 볼레낭(보리수나무) 길과 봉수대를 지나 월라봉을 오른다. 월라봉 오르는 길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월라봉에는 방목하는 소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는 모습이 간간이 보이는데, 순한 소라고 방심하면 안 된다. 산허리를 돌 때 쯤, 수풀에서 부스럭 소리가 나더니 갑자기 커다란 소가 불쑥 나타나더니 돌진해오기 시작했다. 생각지 못한 공격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얼른 몸을 피하긴 했는데, 어이없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내가 만난 소는 순한 소가 아니라 성깔 있는 소였나 보다.
제주 곳곳에는 일제가 두더지처럼 파 놓은 동굴진지가 많은데, 월라봉에도 태평양전쟁 때 일제가 연합군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만든 동굴진지가 어김없이 여럿 보인다. 앞에서 걷던 올레꾼이 동굴 속을 들여다보더니 천장에 박쥐가 달려 있다고 알려준다.
월라봉에서 내려오는 길 중간 중간마다 나뭇가지 사이로 아래 풍경이 시원하게 보이고, 멀리 산방산도 눈에 들어온다. 평지에 다다라 인덕계곡에서 흘러나오는 황개천을 지날 무렵, 또다시 뱀의 출현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대평리의 아름다운 풍경과 자연동물원 같은 올레길에서 만났던 새, 소, 박쥐, 뱀을 생각하며 9코스의 종착지인 화순금모래해변을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