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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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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10코스]아름답고 아픈 길, 올레 10코스

[올레10코스]아름답고 아픈 길, 올레 10코스

by 이미경 객원기자 2017.12.27

화순금모래해변에서 시작해 하모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올레 10코스는 걷는 내내 탄성을 자아내는 아름다운 길이지만, 풍경 사이사이로 아픔과 슬픔이 서려 있는 역사의 길이기도 하다.

실제로 금이 함유되어 있었다던 금모래 해안을 벗어나 제주 남쪽 트레이드마크인 산방산 둘레길로 들어선다. 힘센 설문대할망이 뾰족한 한라산 봉우리 때문에 엉덩이가 아파서 그것을 쑥 떼어 획 던졌는데, 그 봉우리가 떨어져 생긴 게 산방산이란다. 신기하게도 한라산 분화구인 백록담과 산방산 둘레가 똑같다고 한다.
황토색의 퇴적암으로 이루어진 사계리 해안의 하모리층에는 개미집처럼 동그란 구멍이 뽕뽕 뚫려 있다. 모래나 자갈 등이 파도 물살에 소용돌이치면서 생긴 돌개구멍이라는데, 얼마나 오랜 세월을 부딪쳐야 이런 모양이 생기는 걸까. 찰나를 사는 인간에게 억겁의 시간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나란히 마주서 떠 있는 형제섬이 눈에 들어오고, 송악산 진입로에 들어서면 바닷바람에 몸을 흔드는 억새가 일렁인다. 송악산 둘레길에 올라서면 탁 트인 해안 절경에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고, 눈과 마음에 아름다운 풍경을 담느라 발걸음은 점점 느려진다. 송악산을 빙 돌아 나오면 솔잎향 가득한 해송길로 이어지고 발바닥은 푹신한 솜털 위를 걷는 듯 포근하다.
송악산을 지나면 노천 역사박물관이라 칭할 수 있는 셋알오름, 섯알오름으로 이어진다. 셋알오름에는 일본이 주민들을 동원해 만든 알뜨르(아래 벌판) 비행장이 있고, 알뜨르 비행장을 보호하기 위해 지은 원형의 고사포 진지, 격납고, 관제탑 등이 남아 있는데, 고사포는 비행기를 사격하기 위한 대포라고 한다. 태평양전쟁에서 수세에 몰린 일본의 최후 몸부림의 흔적이다.

셋알오름에서 멀지 않은 곳, 섯알오름에는 1950년, 수백 명의 민간인을 학살한 4·3사건의 학살터와 희생자 추모비가 있다.
올레 10코스는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운 풍경을 품고 있는 반면, 이처럼 일제가 남긴 전쟁의 상처와 동족상잔의 비극을 안고 있는 아픈 길이기도 하다.

어느덧 조선 시대 네덜란드인 하멜이 표류했다던 하모해수욕장에 다다른다. 파도가 넘실거리고, 바람이 살랑거리고, 잎 그림자가 길 위에 어른거린다. 해안을 따라 걷다 보니 먹구름 사이로 빛이 내린다. 해안 숲길 사이로 네잎 클로버가 빼꼼 얼굴을 내밀고 있다. 두 발로 느리게 걸을 때에야 비로소 보이고 들리는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