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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목 관아 영주관 객사터 발굴조사 시작

제주목 관아 영주관 객사터 발굴조사 시작

by 원지애 기자 2013.06.10

, 조선시대 외부 관리 및 사신들의 숙소
제주시 문화유적지관리사무소(소장 고매숙)에서는 사적 제380호로 지정된 제주목 관아 영주관(瀛洲館) 객사터(客舍址)에 대한 발굴조사가 6월부터 시작된다고 밝혔다.

이번 발굴조사는 용역비 2억을 투입해 제주시 삼도2동 16-1번지(2,050㎡)에 대해 조사가 이루어질 예정이다. 지난 2011년 제주목관아 보존·관리 및 활용계획 연구용역에서 영주관 객사터 발굴사업의 필요성을 제시했고 이에 따라 정밀발굴조사를 통해 영주관의 정확한 위치와 구조를 밝혀내 영주관 복원의 기초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사업이다.

제주목 관아는 조선시대 제주지방 통치의 중심지였던 곳으로 지금의 관덕정을 포함한 주변 일대에 분포해 있었으며, 이미 탐라시대부터 성주청 등 주요 관아시설이 있었던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1990년도 까지만 해도 관덕정을 제외한 제주목 관아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았다.

제주시에 따르면 제주목 관아에 대한 발굴조사는 지난 1991년부터 총 5차례에 걸쳐 실시했으며, 조사결과 홍화각(弘化閣), 연희각(延曦閣), 우연당(友蓮堂), 영주협당(瀛洲協堂), 외대문(外大門), 귤림당(橘林堂), 중대문(中大門), 망경루(望京樓), 회랑(回廊) 등의 관아 건물터가 확인됐다. 이후 지난 1993년 국가사적으로 지정됐으며, 사적으로 지정된 후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관아 건물터 9동이 복원되면서 현재 제주목 관아의 모습을 갖추게됐다.

이번에 발굴조사가 진행될 영주관 객사터는 지난 2012년 사적으로 추가지정 됐으며, 현재 위치는 복원된 목관아 북쪽, 제주북초등학교 동쪽이며 문헌기록상에도 제주 성안 북쪽 모퉁이에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객사는 일반적으로 조선시대 지방관아의 관사로 외부 관리나 사신의 숙소로 사용했던 곳이며 관아의 기본적인 관아시설 중 하나이다. 또한 타 지역의 목관아 복원 사례에서도 관아 시설 복원의 기본적인 사안으로 꼽히고 있다.

한편 제주시는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제주목관아의 기본 관아시설인 영주관 객사터의 위치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각종 학술적인 정보를 조사·기록해 나감은 물론 축적된 자료를 바탕으로 보존·정비방안을 모색할 방침"이라고 말했다.